어쩌다 시작된 미용실 컨설팅
고등학생 시절, 일찍이 미용 쪽으로 진로를 정한 S원장은 대학도 미용과로 가고 20살부터 미용실 근무를 하였으니 미용 짬밥 먹은 지도 20년이 다되어간다.
미용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미용실 원장이 된 지도 수년이 흘렀다.
다행히 본인만의 전문 분야가 생겼고, 기술력을 인정받았는지 미용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그 스스로도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덕분에 학창 시절 본인보다 훨씬 공부를 잘해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보다 더 많이 버는 나름 자리 잡은 미용실 원장이 되었다.
그도 흙수저 출신이지만 이젠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게 된 것이다.
미용기술도 수준급에 올랐고,
단골고객도 제법 있고,
평탄할 것 같은 그의 삶 속을 들여다보면 그리 평안하진 않다.
대한민국의 자영업자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미용실 원장은 자영업자이면서 경영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자리다.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을 해야 하고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
하루종일 서서 고객의 머리를 만져주고,
바쁠 땐 점심도 건너뛴 채 저녁 9시가 넘어서 첫끼를 먹는 날도 허다한데,
예상치 못한 고객의 컴플레인이 터져버리면 그걸 감당을 할 에너지가 남아있기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S원장은 꼭 늦은 밤이면 느닷없이 전화를 해왔다.
밤 9시가 넘어서 그에게 전화가 온다는 것은 분명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였다.
밤 10시가 다될 무렵,
핸드폰 진동이 바삐 울렸다.
S원장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미용실 이전을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의 가게 자리는 위치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좁은 매장 사이즈가 늘 문제였다.
디자이너를 더 채용하여 규모를 키우고 싶어도 공간적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부동산도 돌아보고
미용실 매물을 열심히 들여다 보기만 수년째,
어느 미용실이 얼마의 권리금으로 나왔는지 줄줄 꿸정도로 빠삭했지만
그는 여전히 미용실을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는 장애가 있었다.
결정장애.
급하게 전화를 했던 이유는,
마음속에 점찍어 뒀던 매물로 나온 미용실이 있었는데.
누군가 계약금을 방금 입금했다는 것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전화가 온 것이었다.
최초에 시설권리금 1억 원으로 나왔던 미용실 매물.
사진을 보니 인테리어 비용만 1억 원은 훌쩍 넘었을 것 같았다.
위치가 좀 아쉽긴 하지만 요즘은 인스타 마케팅으로 밀면 위치 핸디캡 정도는 극복 가능하니,
넓은 규모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되어 있는 괜찮은 매물이었다.
그러나 S원장은 1억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요즘 같은 힘든 시기... 3천까지도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니나 다를까.
권리금은 4천만 원대 까지도 떨어졌었다.
조금 더 가격이 떨어지길 기다리던 S원장은 누군가 계약금을 입금했다는 소리를 듣고 멘붕이 왔다.
좋은 매물을 놓쳤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는 스스로가 밉게 느껴졌을 것이다.
계약금을 넣었다고 해서 아주 기회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정말로 놓치기 싫은 매물이라면
매도자를 설득해서 매수인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번 결정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난 S원장이 이번 기회에 스스로가 배울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되길 원했다.
그래서 그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마음의 소리
S원장은 그 매물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마음이 끌린다는 것이었다.
(계약금 배액 배상을 해주고서라도 그 매물을 잡고 싶은데 결정하기 힘드니 그럼 빨리 잡으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전화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 너의 마음의 소리대로 해.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것 같으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나아.
그의 캐릭터라면
웃돈을 주고서 매장을 인수한다고 한들,
괜히 돈을 더 썼다는 생각을 되새김질하며 후회를 할 것이 뻔했다.
특히나 요즘 같은 불경기에 좀 더 좋은 조건의 미용실이 더 좋은 가격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다.
첫째로, 그가 그렇게 원하는, 마음에 드는 매물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둘째로, 미용실 계속 미루는 것은 확장의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용실 원장이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은데 언제까지 매물만 보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괜찮은 인테리어와 규모라면 빨리 의사결정을 하여 이전을 해보고 미용실 운영에 집중을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셋째로, 실패의 경험이다.
매장 이전을 하였는데, 혹시나 위치 핸디캡으로 미용실이 잘 안 되더라도 회복하기 힘든 수준의 문제는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 다시 미용실을 재이전을 해야겠지만 그래서 잃게 되는 건 몇천만 원의 시설권리금과 기회비용일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겠지만)
앞으로 미용실 운영을 계속한다면 자기 건물에 미용실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몇 번의 이전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번 한번 잘못된다 한들 미래를 생각하면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전에 해야 할 일
S원장에게 숙제를 하나 내줬다.
노트를 꺼내서
어렵사리, 비용을 더 들여서 매장 이전을 하고 났는데,
혹시나 더 좋은 매물이 나왔을 때
마음이 평안할 수 있겠는가?
(그의 캐릭터라면 이 문제를 반드시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에게 지금 추가 비용을 들여서 매장 이전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알려줬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