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수전에서 조선수군과 이순신 장군의 공로가 더 중요하지만요...
청야 전술 or 초토화 전술
초토화 전술이라는 방어 전술이 있습니다. 그 자세한 설명은 위키의 내용을 참조하시고, 간단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https://namu.wiki/w/%EC%B2%AD%EC%95%BC%20%EC%A0%84%EC%88%A0
'방어군이 후퇴하기 전에 적군의 손에 들어가서 유용한 모든 물자를 제거하여, 적군에게 보급의 한계를 강요하는 전술'
특히, 고대 전쟁의 경우에는 '보급'이 가장 중요했고, 실제 인력으로 전쟁을 치르던 고대시대에서 며칠만 굶게 되면 전쟁이 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이라는...
일본군은 현지 보급을 통해서, 전쟁을 수행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조선의 가난함과 도시가 발달하지 못하고, 도로 상황이 엉망이라는 현지 상황을 전략적으로 판단못한 결과물이라고 혼자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자세한 내용도 그냥 위키에서..
https://namu.wiki/w/%EC%9E%84%EC%A7%84%EC%99%9C%EB%9E%80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은 그러합니다.
1. 일본군은 상륙한 지 며칠 만에 부산을 넘어, 탄금대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한양을 점령하고, 평양까지 넘어옴.
2. 그런데, 개전 후 2달이 지나가 상황이 변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주 구체적인 이유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뭐, 의병이나 기타 다른 이야기에 대해서 나온다.
3. 그리고, 일본군은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점령하기 위해서 평양까지 진출한 왜군들을 전라도로 내리지 못했다?
4. 전라도의 수로를 통해서 무언가 통로를 만들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 이순신 장군 덕분.. )
이렇게 짧게 4가지의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저는 이렇게 끄적거려 보고 싶네요.
1. 일본군은 당시에 정말 잘 싸움. 당시 최고의 전력이라고 평가를 군사전문가들이 하더군요. ( 정말 당시 최고의 군사능력을 가졌던 것은 인정 )
2. 부산-> 탄금대-> 한양-> 평양까지 밀고 올라가면서 '한양'을 점령하면 조선의 국왕을 사로잡아 전쟁이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조선의 국왕은 피난을 간다는 것이라고는 판단하지 못하고, 전쟁이 길어짐.
3. 보통, 일본의 전쟁사를 보면... 도시에 '식량'과 '전쟁물자'들이 넉넉해서, 도시 점령하면 충분한 물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음. 그런데, 막상 조선에 들어와 보니... '도시'에 '전쟁물자'가 거의 없었음.
4. 사실상 '청야 전술' or '초토화 전술'을 이미 몸으로 조선이 실현할 정도로 가난한 상태였음. 너무 가난해서, 현지 보급이 안됨. (!!!! - 이렇게 가난한 나라인 것인 줄 모름!!! )
5. 그래서,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점령해야 하는데... 이미, 주력 부대는 너무 위로 올라감. 내려오기에는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그들을 위해서는 '보급로'가 필수적이었고, 조선 땅은 '도로 자체'가 거의 없어서, 육로로는 도저희 보급이 불가능한 상태였음.
6. 결국, 전라도를 우회하는 수로밖에 없었는데 이 루트를 이순신 장군이 잘 막아주심.
7. 아이러니 하지만, 보급이 안 되는 일본군은 계속 후퇴했고, 보급로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쟁을 포기하게 됨.
사실, 일본군은 '현지 보급'이 안되고, '육로 보급도 불가능한 수준의 도로 상황'과 더불어서, 유일하게 '수로'를 얻어야 했는데, 이것에 실패해서, 임진왜란에 실패한 것 아니냐는... 그냥, 개인적인 생각을 끄적거려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의병과 이순신장군의 수전, 명군의 참전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뭐, 제가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임진왜란에 대해서 혼자 생각해보다가 내린 혼자만의 결론입니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ㅎㅎ...
조선의 가난함이, 일본군을 물리쳤다?
그런 논문도 하나쯤은 있을법 한데.. 찾아보면 있겠죠?
그냥, 혼자 생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