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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 Sep 17. 2020

언택트 시대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젊은 꼰대가 알려주는 '명절에 좋은 어른 되는 법'

옛날에는 '과거'를 알면 '현재'와 '미래'를 잘 살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과거'를 안다고 해서 '현재'와 '미래'에 잘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졌단다.

그래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을 존경할 수가 없지.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나이 든 사람들은 아직 '과거'이야기만 해. ('나 때는 말이야'같은 거)

그들이 해주는 말은 사실 구글이나 네이버가 더 정확하게 알려주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


가 만났던 미래학자 선생님이 해준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선생으로서 해줄 수 있는 건,

 

1. 책을 미리 많이 읽어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것

2. 학생이 찾아왔을 때, 학생들의 말을 경청해주는 것

3. 좋은 질문을 통해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몇 년간, 그리고 아직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되물어라

2년 전,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글이 SNS를 비롯한 온라인에서 화제였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다들 자발적으로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추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각자의 대답을 글로 써 공유했습니다.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나의 추석

저는 제사와 차례를 챙겨 지내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김해 김 씨, 김수로왕의 71대손이자 기장의... 아무튼,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집안에서 살았습니다. 운 좋게도 집안 어른들이 다들 좋은 분이라, 명절마다 신문이나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명절의 고충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사람들은 명절을 싫어하지?'라는 생각을 명절마다 할 수 있었습니다. 맛있는 송편을 먹으면서.


차례를 지낼 때 공수는 왜 어느 손이 위로 올라가야 하는지, 차례 지낼 때 절은 왜 6번을 해야 하는지, 화문석은 왜 까는 것인지, 양초는 왜 키는 것인지 등등 어른들께 물어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게 의식(리추얼)이었습니다. 유래가 다 그럴듯했습니다. 그리고 구시대적이라는 것과, 본래의 취지와 많이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명절 없어지다

우리 가족의 어른들은, 그 점을 알고 올해 설에 새로운 규칙을 정했습니다. 올해 추석부터는 명절에 큰집에 모이지 말고, 각자 집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하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대신 할아버지 제사 때는 꼭 모이기로 하고!)


그런데 올해 추석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없어질 것 같습니다. 정부는 추석에 이동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생각해도 정말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정말 심각하니까요. 올해, 많은 집에서 추석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 번 하지 않으면, 다음 설 그리고 다음 추석도 없어질 것입니다.(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우니까)


차례상을 차리는데 보통 50만원정도가 든다는데, 그걸 아낄 수 있는 건 좋아 보입니다.


추석의 취지

사람들이 추석을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래 취지를 전혀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석은 전을 굽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거나, 그리고 홍동백서로 음식을 장만하기 위해서 생긴 것이 아니잖아요.


추석은 서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기 어려웠던 옛날, 추석만큼이라도 우리 가족이 불편함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날이었습니다. 먹는 것이 항상 부족했던 옛날, 추석이라는 핑계로 평소에 먹을 수 없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웃에게 나누는 날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늘 좋은 것만 주려고 희생하고 사랑을 나눠주었던 어른들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옛날이 아닌데, 옛날처럼 하는 건 취지에 맞지 않겠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어른들

그러니 저는 추석 차례상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는 장어구이와 광어회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소주를 좋아하셨죠.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근처 수변시장에서 광어회를 사서 할아버지께 드렸었는데, 할아버지는 가장 행복한 표졍이셨습니다. 그런데 평소 먹지도 않으셨을 전이나 소고기 산적이 차례상에 올라와 있는 건 제 눈에 정말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제가 있으면 뭐든 좋아하셨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 번 돈으로 근처 시장에서 과일을 사서 가져다 드리니, 너무 좋아하시며 드셨습니다. (나중에 아빠한테 물어보니 할머니가 별로 안 좋아하는 과일이라고 하긴 했다..) 제가 사소한 무언가라도 해드리면,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니셨습니다. 저에게 잔소리는 한 번 안 하시고, 제가 말을 하면 그냥 미소로 들어주셨습니다.


제가 만났던 좋은 어른들은 늘 그랬습니다. 사소한 것에 감동하시고, 잔소리를 하지 않으시고, 들어주셨습니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지금 사람들이 '싫어하는 명절의 형태'가 남아 있는 이유는, 몇몇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이 많은 사람'이 돌아가신 어른들을 핑계 삼아 허례허식만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은 홍동백서 차례상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소중한 딸들이 명절 증후군을 앓는 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 소중한 아들들이 형제와 쓸모없는 다툼을 하는 걸 원하지 않을 겁니다. 단언컨대.


정말 추석을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길 바랍니다.

어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일지.


언택트 시대의 추석

이번 추석은 어쩔 수 없이, 언택트로 진행돼야 합니다.

상황이 이런데 무조건 가족을 만나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면,

당신이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정말 가족을 위해서 추석을 보내고 싶다면, 자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보내야 하는 추석 동안

잘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주하지 않고도, 친근감을 느낄 수 있어야

다음에 대면으로 반갑게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나이 적은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는 당신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 제대로 좋은 방법으로 전하세요.

듣기 싫은 잔소리는 그 마음을 하나도 전할 수 없습니다.




- 사족 1

차례상 차리는 비용 50만원정도를 아낄 수 있을 텐데,

다음에 가족끼리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거나,

세상의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 보태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럼 자식들이 당신을 아주 존경할 텐데요...


- 사족 2

명절 때는, 용돈만 주고 아무 말 없이 사라져 버리는 어른들이 최고예요.

결국 그분들에게는 안부인사를 보낼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 방법을 잘 활용해보세요!


- 사족 3

책에서 봤는데,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 중 하나는

좋은 사람인 '척'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척하다 보면 결국 그렇게 돼버린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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