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대학생이 궁금해하는 전문연구요원, 시민이 궁금해하는 전문연구요원
설명회 발표가 끝나고, 관련자를(직급은 밝히지 않음) 따로 뵐 기회가 있었다. 00기자라는 것을 밝히고, 오늘 설명회 내용을 기사로 작성해도 되겠느냐고 말씀드렸다. '예? 기자시라고요? 어떻게 기자님이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아...안그래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서기관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랬을까? 전문연구요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이때, 전문연구요원 제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널리 전달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좋은 일일 것이다. 그는 어째서 전문연구요원 제도 관련 기사가 작성되는 것을 꺼려 했을까?
병무청이 준비한 자료는 흥미로웠다. 솔직히, 병무청이 준비한 자료 어디에서도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존속되어야 할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박사과정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폐지되어야 할 이유가 더욱 명확해 보였다. 그러니까 그 자료를 만들어 온 병무청 또한, 전문연구요원 제도의 존속에 설득력 있는 근거가 빈약함을 인지하고 있는 듯 했다.
#전문연구요원 요즘도 필요할까?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한국의 과학기술 분야를 견인할 수 있는 석-박사급 고급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베이비붐 시대 당시 병역자원이 풍부했던 점도 한 몫 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의 이공계 인력이 현역병 복무를 대신해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되면서 고급 인력 수급에 중요한 기능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를 보면, 2000년 이후 출산율이 급감하여 2023년 이후는 병역자원이 부족하다고 한다. 반면에 고학력자는 계속 증가하여, 2017년 배출된 학사는 31만6천여 명이고 석/박사는 10만여 명에 이르렀다. 매년 1만 명씩 박사학위자가 배출되는 시대다.
서른 살이 넘어 박사 학위를 받아도 들인 노력 만큼의 인정을 받기 어렵다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구 인력이 과잉 배출되고 있다는 신호다. 제도 도입 당시의 목적(우수인력 양성)은 이미 달성되었고, 차라리 다른 방향에서 제도의 존속 의미를 찾아야 하는 때가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전문연구요원 특혜다.
전문연구요원은 개인학업을 병역이행으로 인정해주며, 복무 중 장기간 국외여행/연수를 허가해 준다. 무엇보다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 장소의 제한, 업무의 제한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게다가 전문연구요원 제도를 둘러싼 비리도 지속적으로 발생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병무청에서 권하는 것은(대책은),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지켜서 국민으로부터 인정 및 신뢰를 받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크게 이슈 만들 거리를 제공하지 말고 제도를 유지하자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전문연구요원제도는 국가 발전을 위해 공부 잘 하는 사람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제도다. 체육요원, 예술요원도 마찬가지다. 국위선양이라는 구실로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한 운동선수들이 커리어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고액 연봉을 수령하며 선수 생활을 지속하는 동안 일반 남성들은 대학생활 도중에 커리어를 중단하고 입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 까닭은,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산업계에나 교육계에 명백한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정상적인 채용으로 만나기 어려운 고급인력을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에 고용할 수 있고, 대학원들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제하면 하루 세 끼 먹기도 어려운 돈을 주면서 우수한 박사과정 학생들을 받을 수 있다. 어찌되었건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남성들에게는 여전히 고려할 만 한 옵션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제도가 사라지면 산업계와 교육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냥 큰 타격 수준이 아니고, 산업계와 교육계의 생존을 위해 인재 수급 전략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국내 유학과 해외 유학을 놓고 고민하던 사람들이 해외유학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날 것이고, 국내 대학원은 우수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병역 혜택 이외의 다른 유인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논의 가 필요하다.
지금 과학계에는 이보다 더 결정적인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각종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선두를 미국-일본-유럽-중국 등이 선점하고,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독과점을 넘보는 상황에서 전문연구요원 제도에까지 손을 대면, 중단기적으로 과학기술인력에 공백이 생길 것이고, 정치권에도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만약 대학원에 '우수한 잠재력을 갖춘 일부 남자 대학원생들은 전문연구요원을 통해 병역을 해결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인센티브가 없다면, 진로 선택을 할 때 대학원이 취업에 비해 어느 정도 경쟁력 있는 선택지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인센티브가 필요할까?
아니면 대학원은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학문이 좋아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극소수의 이공학도들에게만 고려해볼 만 한 선택지가 될 까? 그럼 한국 첨단산업은 누가 이끌어 가게 될 까?
제도는 바꿀 수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그보다 바꾸기 어렵다.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제도 개선 과정에 포함되지 않으면 미래 성장동력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과학기술부와 교육부가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에는 이러한 부분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였다.
#과학자가 무엇을 해야 할까?
혜택이 있는 데 활용하지 않는 건 바보같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 혜택이 현재로서는 마땅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인의 층위에서는, 전문연구요원으로 성실히 복무하는 게 한가지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방향으로는, 과학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은 점점 사회에 밀착하고 있다. 일상에서든, 일터에서든 앞으로도 (적어도 당분간은) 과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더 많이 공유될 것이다. 과학자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사회적 리소스가 투입되는 과학자 양성 정책이 투자한 만큼의 가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올해 진행된 전문연구요원 제도 설명회에 참석하여 개인적으로 느낀 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병무청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