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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민 Nov 10. 2023

나의 밖에서 나를 본다

이규리의 시 〈그녀에게〉

혼자 울고 싶은 날이 있지
해 질 무렵
어떤 매혹이 강을 부르고     

위험을 친근하게 해주었으므로     

나는 강물 쪽으로 점점 다가가고 있었는데
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산책로 한쪽에 주차한 승합차 운전석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오로지 울고 있었다     

내 울음이 그쪽으로 건너간 듯     

방죽을 돌아 다가갔을 때
그녀 아직 울음 속에 들어 있었다     

울음에도 유속이 있어
어떤 소용돌이에선 전신이 다 빨려나가기도 하지
한순간이 자포자기의 회오리로 자진하기도 하지
저 속도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조수석 문을 열어젖히고 성큼 올라타
더 크게 울어버렸지
무지하게 차지해버렸지
놀라 바라보는 눈 속에 붉은 강이 비치고     

상류에서 하류까지
울분에서 자조까지     

슬픔이 슬픔을 덮어 강 아니겠는지     

이윽고 그녀에게
천천히 제자리에 돌아온     

밤에게
강물에게       

이규리 〈그녀에게〉 전문.



후두두 가을비 내리더니 기온도 따라 내려간다. 겨울인가. 이렇게 갑자기. 마음의 계절은 어떤가. 깊이 생각하면 너무 깊어질 줄 알아서 판단을 피한다. 대신 맞춤한 시집을 꺼내 읽는다. 이규리 시인의 《당신은 첫눈입니까》(문학동네, 2020). 어디를 펴봐도 겨울의 허망과 불가해함이 느껴지므로 어떤 시를 말하든 요즘 날씨와 어울릴 법한데, 그중 한 편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표제작 또는 울고 싶은 기분을 느낀 시(내게는 〈이후〉가 그랬다)를 말해도 좋겠지만, 오늘은 위에 옮겨 적은 대로 〈그녀에게〉에 기대 짧은 글을 쓰려고 한다. 산책과 정경에 관해 말해보고 싶어서다.  

   

먼저, 시의 장면을 보자. ‘나’는 지금 울고 싶다. 그런 기분으로 산책로를 걷다가 승합차 운전석에 앉아 우는 ‘여자’를 본다. 별일은 지금부터. 울음의 거센 유속을 견디지 못한 ‘나’는 급기야 승합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는다. 그러고는 방죽이 무너진 듯 울어버린다. 놀란 ‘여자’와 우는 ‘나’. 그 사이 “슬픔이 슬픔을 덮어 강”이 돼 흐르고 밤이 온다. 나는 이 시가 반갑다. 산책로가 나온다는 점에서. 우리는 저마다 몇 가지 문제를 마음에 두고 산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아니 미뤄라도 보려는 각자의 의식이 있을 것이다. 시 속 ‘나’처럼 나도 길을 걷는 편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이른 밤, 나는 가까운 산책로를 걷다가 가로등 밑 벤치에 앉은 한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양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무릎엔 검은색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엔 멸치가 가득했다. 가로등 흰빛 아래서 멸치 손질하는 여자를 지나니 머릿속에 비 내리듯 물음표가 쏟아졌다. ‘왜 여기서?’ ‘이 시간에?’ ‘혼자?’ 한 바퀴 돌고서 다시 그곳에 도착했을 때 의문에 답해줄 사람은 이미 가고 없었다. 하릴없이 내 식대로 상상했다. 혹 멸치 머리를 떼어내듯 생각을 비우고 싶었나. 내장과 꼬리를 정리하듯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있었나.

     

아무리 짐작해 봐도 진실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자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목격과 어림만으로 내 마음이 얼마간 변했으므로. 왜 그랬을까? 어둡고 환한 곳에 앉아 멸치를 손질하는 일이 나의 밤 산책과 다르지 않은 듯해서. 아니, 그보다 더 적극적인 해소처럼 보여서 기분이 개운해진 것이다. 늘 그런다. 누군가 자기만의 의식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장면을 볼 때 내 마음에 바람이 분다. 무언가 떼어내고, 무언갈 버리는. 때로 시를 읽는 기분도 든다. 내가 길을 걷고, 시에 눈길을 두는 이유 중에는 그런 바람도 있는 듯하다.     


걸을 때 거리의 모든 사람은 정경이 된다. 걷는 나도 마찬가지. 서로에게 흐린 눈길 흘리며 혼자로 걷는다. 타인의 한숨을 마시고 나도 되돌려준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잠시 자연에 속한다. 팔다리가 바람처럼 지나가고, 생각이 강물처럼 흐른다. 밖으로, 안으로, 다시 밖으로. 눈에 비친 정경 중에는 내가 있다. 우는 사람, 웃는 사람, 멸치 손질하는 사람. 시 속 ‘나’처럼 불현듯 다가가 같이 울고, 웃고, 멸치를 손질하지는 못하지만, 잠시 같은 배경에 속해 걸을 때 나는 나의 밖에서 나를 본다. 반갑게, 개운하게, 아프게. 그러니까 내게 산책이란 이런 것. 물론 시도 그렇다.



(2023. 11. 09.)

(@dltoqur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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