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젠틀맨: 더 시리즈》 & 《닭강정》
OTT 신작 앞에서 자주 품는 두 가지 불만. ‘너무 많다.’ 그리고 ‘볼 게 없다.’ 두 불만이 합쳐져 ‘작품은 너무 많은데 볼 게 없다’ 느껴지면 구독 해지를 고민한다. 구독료 값을 못 하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항상’ 작품만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탓도 있을 테니까. 언제나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을 기대하지만 그런 작품은 흔치 않다. 흔치 않은 걸 자주 기대하니 실망할 일도 그만큼 늘어나는 것 아니겠는가. 인생은 순간의 총합. 순간이 소중하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매번 최고의 순간을 만끽할 수는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니 한 번에 한두 가지만 기대하자. 오늘의 기대는 흥미와 유쾌함. 내게 그것을 충족시켜 준 시리즈 두 편을 소개한다. 최신작들이므로 스포일러는 담지 않겠다.
먼저 《젠틀맨: 더 시리즈》(넷플릭스, 2024). 이 시리즈는 영화 《젠틀맨》(2020)의 설정을 확장한 작품이다. 영화의 연출자인 가이 리치 감독이 이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와 1, 2화 연출 맡았다. 그것이 시리즈 전반에 그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는 이유일 텐데, 아무래도 나는 그의 연출 스타일을 선호하는 듯하다. 첫 두 편만 보고도 이야기에 휩쓸려 버렸으니까. 리듬감(전개)과 생략 후 재구성(편집)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등장인물의 개성도 말해 보고 싶다. 살다 보면 잠시 스치기만 해도 잊히지 않는, 독특한 인물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 시리즈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그랬다. 그들을 만나는 게 흥미롭고 유쾌했다. 범죄물이므로 설정과 장면이 과격했지만, 현실의 재현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다음은 이병헌 감독의 연출작 《닭강정》(넷플릭스, 2024). 원작 웹툰을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이런 상상이 가능할까?’ 시리즈를 보고도 그랬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작품 같았다. 익숙한 게 있다면 배우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병헌 감독 유니버스라는 게 있다면, 이 시리즈는 ‘올스타전’처럼 보인다. 감독의 대표작인 영화 《극한직업》(2019)의 주연 배우(류승용)와 TV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 2019)의 주연 배우(안재홍)를 비롯해 감독의 전작에 출연한 배우들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의 재미는 반가운 배우들의 과장된 슬랩스틱과 넘치는 말맛에 있었다.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다가도 원작을 떠올리며 수긍했다. 욕설이 난무해도 ‘배려’를 곱씹게 해줘서 각별하다.
두 시리즈의 공통점은 감독의 인장이 찍힌 듯 특유의 개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이라는 점일 테다. 당연히, 그 개성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호오(好惡)가 나뉘지 않는 작품은 없으므로. ‘크게’ 나뉘는 작품이 있더라도 그것을 수치화해 파악하는 건 지난한 일. 아니, 바쁘디바쁜 현대 사회에서 시청자가 그것에 골몰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보고 좋으면 좋은 것. 아니면 아쉬워하면 그만이다. 어떤 경우든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인생은 선택이고 그 선택은 실패로 귀결 때가 더 많다. 그때마다 치러야 할 값에 비하면 아쉬운 선택 뒤 아른거리는 구독료의 값은, 어쩌면 가장 안전하고 저렴한 실패의 대가(代價)인지도 모른다. 그 대가는 쌓이면 경험치가 되고, 누적은 자기 취향을 알게 해주니 큰 손해는 아니리라.
(2024. 03.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