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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치하이커 Jan 22. 2017

사랑과 영혼

머리와 가슴 사이에서

지난 주에 '노숙자'를 만났다. 

불쌍한 마음보다 불편한 마음이 더 컸기에 값싼 커피 한 잔을 대접하는게 고작이었다.  그는 내 대단찮은 성의에무척 고마워했다.  손사래를 치며 별 것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그가 얼른 다른 곳으로 가길 바랬었다.


얼마 후 그는 자리를 비웠다.  양손 가득한 짐(얇은 내피 이불과 정리 안된 옷가지들)을 들고 눈이 쌓인 거리를 목적지도 없이 가고 있었다. 채 얼어붙은 몸을 녹이지도 못하고 다시 얼어붙기 위해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뒤늦게 어디로 가시는지, 그러고보니 식사를 하셨는지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오후가 지나도 그 모습이 눈에 밟히고 마음이 계속 울렁거렸다. 


몇 달 전 어머니는 독거노인 봉사를 하러 갔다가 어떤 할머니가 옷을 얇게 입고 있어서 그 자리에서 자신이 입었던 외투를  벗어줬다고 했다.  산지 얼마 안된 옷을 조건 없이 내어주고 종일 얇은 옷을 입고 봉사를 했다는 어머니 얘기에 나는 펄쩍 뛰며 쓸데 없는짓을 했다고 말하려다 그만뒀다. 어쩐지 그 얘기를 하는 어머니가 행복해보였기 때문이다.


누가 더 가난한가, 누가 더 마음이 가난할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 아니던가.


사람이 숨을 거둘 때 21그램의 몸무게가 줄어든다고 한다. 누군가는 21그램을 '영혼의 무게'라고 말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꽤 신빙성 있어 보인다.


영혼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만약 영혼이 있다면, 어떻게 존재할까.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문다. 


어쩐지 내게 영혼이란 머리와 가슴쯤 중간에 있는 것 같다. 머리만 작동하고 가슴이 작동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있어도 영혼이 없는 사람이다. 우린 지금 영혼을 잃어가는 시대에, 영혼이 있어도 파괴되는 것을 두 눈 뜨고 묵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 자꾸만 찌릿해지고 따뜻해지는 마음이 머리에서 가슴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전달되는 사람,  양심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옳은 일을 따르려는 사람, 오직 그런 사람들에게만 영혼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영혼의 기저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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