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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로움 Jan 18. 2021

슬픔은 무이자 할부 같다.

마음껏 슬퍼할 수 없다는 것. 

한 번에 쏟아내지 못한 슬픔은 매일매일 마주하기 싫은 카드 할부처럼 다가온다. 무이자라는 달콤한 말에 긁은 36개월짜리 할부처럼,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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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4개월 차. 안정기로 접어들었지만, 임신상태에서의 안정기란 없다. 임산부는 언제나 조심해야 하는 '환자'이다. 아기가 엄마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눈을 가리고 우는 형상을 하기도, 춤을 추기도 하며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이때부터는 태교도 중요하게 여겨지고 엄마의 행복이 최우선이 되어 아기가 행복한 세상을 기대하며 태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지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약 일 년을 병상에 누워계셨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을 무력하게 병상을 지키고 계셨다. 유년기에는 세상에 둘도 없이 좋은 아빠였지만, 청년기로 접어든 후부터는 거의 못 보며 지냈다. 내가 어른이 된 뒤의 아버지 공백이 약 12년 가까이 되었기에 실감이 나지도 않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큰 막내딸의 시절이 그립고 아파 울고 또 울었다. 그의 부재가 이제는 기약이 없는 부재라는 것이 희망이 없다는 것이 나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나는 임산부라는 이유로 충분히 슬퍼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장례식장에 가는 것을 두고 가족들이 의논을 해야 했고,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는 것조차 임산부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참 모순적이었다. 나는 그가 만들어 준 사람인데, 내가 품은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슬픔을 삭여야 한다니 말이다. 


장례가 진행되는 내내 나는 거의 울지 않았다. 임종 소식을 들은 직후를 제외하고는 나는 거의 울지 않았다. 내 감정이 무뎌진 걸까? 아버지와의 소원했던 지난 12년이 나를 이렇게 매정한 사람으로 만든 걸까? 나는 나 자신에게도 서운할 정도로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영정 사진 속 우리 아빠가 이상하게 느껴질 뿐, 코로나로 인해 손님조차 받지 않은 이 빈소가 쓸쓸하게 느껴질 뿐, 나는 감정이 무뎌진 사람 같았다.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내내 나는 모든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내가 참여해야 하는 부분은 전부 신랑이 대신하였다. 


장례를 끝내고 서울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노곤했던 신랑이 잠든 사이 일기를 쓰며 처음으로 눈물을 쏟았다. 오랫동안 눈물을 쏟았다. 하고 싶었던 말들을 글로 적으며, 기도하며, 혼자만의 시간 내내 눈물을 쏟았다. 나와 아기를 걱정할 가족들 때문에 보이지 못했던 슬픔을 비로소 쏟아낼 수 있었다. 


한참 뒤에 신랑이 일어났다.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나는 또 슬픔이 밀려들어와 버렸다. 혼자만의 시간보다 더 큰 슬픔이 밀려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으며 처음으로 아빠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미안하다고, 보고 싶다고.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배가 너무 아파졌다. 뱃속의 아기가 울지 말라고 한 건지 등을 펼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당겼다. 그제야 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아기를 위해 슬프지 말아야 하는 임산부였다. 



한 번에 쏟아내지 못한 슬픔은 매일매일 마주하기 싫은 카드 할부처럼 다가온다. 무이자라는 달콤한 말에 긁은 36개월짜리 할부처럼,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엄마가 되는 길이 참 어렵다. 희생을 깔고 부모가 된다는 것을 이렇게 또 새로운 일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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