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그 자리가 처참하게 다가오는 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수많은 시간 속에서 나는 임산부를 만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또 내가 자리를 진짜 임산부에게 양보한 적은 한순간이라도 있었는가?
내가 주로 활동하는 물리적인 공간들 속에서 임산부를 마주한 시간은 극히 드물었다. 직장 내에서도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내가 주로 찾는 지역에서도 임산부는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 생활 범위는 노 키즈존, 노 유부존에 가까운 곳들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몇 년 전부터 서울 지하철에는 핑크색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임산부 배려석이 생겼다. 같은 여자로서 그 자리는 거의 비워두려고 노력했다. 간혹 서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비어있는 지하철에서는 그 자리에 앉기도 했다. '임산부가 내 눈에 보이는 순간 바로 일어나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나는 배가 볼록하게 나온 임산부를 지하철에서 마주한 적이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내 기억 속에 임산부는 없었다. 내 눈에 보인 임산부는 없었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핑크색 배지를 달고 퇴근하는 분들은 본 적이 있다. 이미 사람이 가득했기에 그녀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들은 인파 속에 서 있었다. 내가 앉아있던 언젠가 나도 마주했을 것이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에 고개를 떨군 어느 날 내 앞에 서있던 핑크색 배지를, 어느 힘든 날을 보낸 임산부를.
다시 현재로 돌아와 보자.
나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한다.
임신이란 건 5개월까지는 겉으로 티가 별로 안 난다. 근데, 이때가 되기 전까지 세상에서 겪어본 적 없는 피로감을 느낀다. 체력이 좋다고 생각하던 나조차 틈만 나면 눈이 감기는 피로를 경험했다.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피로감이었다. 그리고 볼드모트의 이름처럼 말로 꺼내기에도 불안한 유산의 위험을 견뎌내야 하는 시기이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절대 안정의 시기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봐서는 티가 거의 나지 않는다. 그래서, 배려를 받을 수가 없다. 배려를 안 해준다는 표현보다는 배려를 해야 할 대상이 그 공간에 있다는 것조차 모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리고 간혹 가방에 달린 핑크색 배지를 보더라도 양심을 조금 속이며 눈을 감아버려도 타인의 눈총을 받지 않는다.
실제로 나도 여러 번 경험했다. 임산부 배지는 암행어사 마패가 아니었다. 배가 어느 정도 나오기 전까지 내가 임산부 배려석을 배려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떤 여자분은 배지를 뚫어져라 보면서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셨는데, 아마 임신이란 걸 경험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배려석은 내 거예요!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일을 한다. 임신을 한 여성이 바로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는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만두고 싶지 않다. 출산 휴가는 아기를 낳기 약 45일 전부터 (법적으로) 허락된다. 만 9개월을 꽉 채워야 정당하게 출산휴가를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야만 육아휴직 뒤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만 9개월의 임산부는 어떤 상태일까?
이미 임신 전과 몸은 확연하게 달라졌고, 평소와 똑같이 생활했을 뿐인데 손발이 퉁퉁 붓는다. 똑바로 누울 수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밤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3~4시간에 한 번씩 깨어나 허리를 두드리고 화장실을 가야 한다. 아기의 태동이 아플 만큼 크게 느껴지고 갈비뼈가 벌어져 욱신거린다. 체중은 10~15KG 이상 체중이 증가한 상태라 조금만 서있어도 발바닥부터 저릿저릿 아파온다. 꼬리뼈는 늘 시큰거리고 폐가 눌려 숨이 거칠어진다. 아주 평균적인 증상이 이 정도이다.
사랑하는 아기를 뱃속에 품은 감격스러움으로 포장하기엔 이런 몸상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철저하게 엄마의 희생이 따르는 것이 2세를 얻는 과정이다.
임신 초기의 어느 날 퇴근길의 지옥을 맛보곤 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힘든 퇴근길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그냥 보통의 날이었고, 그저 자리가 없어 서서 왔을 뿐인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상태였다. 모든 게 서러웠고, 앞으로의 상황이 무서웠다. 그날 이후 나는 택시를 타고 출퇴근 하기 시작했다.
힘들었던 임신 초기를 지나 안정적이라고 불리는 임신 중기가 되었지만 체력이 예전 같지 못한 건 여전했다. 그래도 이때부터는 버스나 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가며 이용할 수 있었다. 여전히 배려는 받지 못했었다. 내가 배려를 받기 시작한 시점은 7개월 차가 되던 때, 배지와 봉긋하게 솟아 오른 배를 번갈아 보고 임산부임을 확인하기 쉬운 시기 즈음이었다.
택시로 25분, 택시비 약 1만 원으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의 출퇴근 길이었기에 택시 출퇴근을 할 수 있었지만, 사실 부담스러운 금액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 회사 유부녀 중엔 나보다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문득 그녀들의 임신이 걱정되기도 하였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이라 했던가. 그 기우가 나의 이야기가 될 줄이야. 아기를 키울 수 있는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된 임신 8개월 차의 지금, 편도 택시비 2.5만 원의 거리에서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신분당선이 이렇게나 핫한 줄은 처음 알게 된 나를 원망하게 되었다. 배가 빵빵하게 나온 상태에서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는다는 건 언제든 응급실행이 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위험하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건 나 자신뿐 아니라 아기를 위험에 빠트리는 것과 같다. 그런 공포감을 느낀 이후 나는 자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막히는 분당-양재 구간을 지나며 느끼는 피로감도 대단하지만, 공포감은 덜하다. 만삭의 임산부가 하루 두 시간씩 운전을 한다고 하면 다들 놀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핑크색 배려석이 정말 임산부의 것일까? 저출산 국가의 민낯은 이런 것 아닐까?
고통을 받는 사람을 생각한 어떤 배려는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가 절대로 아니다. 임신이 싫다는 이야기도 절대로 아니다. 다만, 저출산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현실적인 상황을 알고는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만삭 임산부가 된 내가 느끼는 핑크색 배려석은 여전히 희망고문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