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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지로움 Mar 12. 2022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엄마 같은 엄마는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어느 따듯한 오후 아기를 재우고 거실로 나오니 부재중 전화 한 통이 나를 반긴다. 엄마 다음으로 좋아하는 여자 어른, 큰 이모의 전화다. 어린 시절부터 방학이면 으레 이모집에 가서 한 달씩 보내다 오곤 했을 정도로 이모는 나를 이뻐하셨다. 이모부의 사랑 또한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였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육아가 참 힘드노라며 어리광을 부렸다. 애 엄마가 되어버린 다 큰 조카지만 이모 앞에선 여전히 작고 여린 어린아이 같아진다. 넋두리를 이어가는데, 이모의 말 한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그 말이 왜 그렇게 계속 나를 울렸는지 모르겠어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너 어릴 땐, 너네 엄마 아빠가 바람 불면 날아갈 세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너네 아빠가 정말 그랬어"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자주 하셨던 레퍼토리  하나다. 내가 너무 작고 가벼워서 아장아장 걷다가 바람  애가 휘청거렸다는, 그렇게 걱정이 되었다는 이야기. 엄마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이모가 전했을 뿐인데,  이렇게 마음이 울렸던 걸까? 


엄마 이야기는 나에겐 팩트로 다가왔지만, 이모는 제삼자의 시각으로 엄마 아빠가 나를 키우던 그때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던 때문인 것 같다.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그 9글자 속에 사랑이 가득 차 있다. 부모가 되어보니 비로소 보이는 사랑이.



나는 2.2kg 미숙아로 태어났다. 8삭 둥이 같은 이른 출산도 아니었다. 10달을  채우고 태어난 나는 너무 작고 연약해서 엄마의 품에 안기지도 못한 채 인큐베이터에서 3주를 살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의 유년시절을 온갖 보양식으로 채워 키웠다. 제철에 나는 몸에 좋은 음식은  먹고 자란 덕분에 에너지와 건강함을 뿜어내며 성장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눈에는 여전히 품에 안지도 못하고  손에 겨우 가득 차는 2.2kg 미숙아였나보다. 조금 피곤해서 잠을 많이 잘 때나, 다들 걸리는 감기에 걸린 흔한 상황에도 '우리 애가 몸이 약해서..'로 귀결되었다.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똘똘이 인형보다도 작았다던 나는 이제 엄마보다도 크고, 다이어트를 해야  정도로 무거워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작고 소중한 엄마의 아기'이다.  일례로 엄마는 아직도 내가 무거운 짐을 못 들게 하신다. 내가 제주도를 자전거 타고 한 바퀴 돌 정도로 튼튼하다 할지라도 엄마와 마트에서 나오는  손에는 가장 가벼운 봉지 하나 정도밖엔 허락되지 않는다. (열 번 양보해서 엄마랑 손잡이를 나눠 드는 정도?)


나는 이렇게 사랑으로 성장했다. 엄마의 사랑으로, 아빠의 사랑으로.

사랑으로 뿌리내린 튼튼한 마음 덕분에 태풍이 몰아쳐도 무지개를 기대하며 웃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엄마와는 다르게 나는 3.84kg 우량아를 낳았다. 내가 태어난 것보다 무려 1.64kg   아기를 낳았다. (신생아 크기를 비교해보면 놀랄 만큼  차이다.) 모든 과정이 아름다웠다면 감사했겠지만, 출산 과정에서 발생한 응급상황으로 세상에 나온 나의 우량 아기는 몇 시간을 홀로 니큐에서 머물러야 했다. 다행히도 그 후 아기는 안정적인 상태로 우리 부부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만약, 그 다행이라는 상황이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고 아기 혼자 대형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로 옮겨져야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우리 엄마의 마음에 작게나마 공감할 수 있었을까?


제 이름을 알아듣고, 몇 가지 낱말들을 알아들으며 제법 사람다워진 아기를 키우는 요즘 나는 몇 가지를 자꾸 까먹는다. 내가 아기에게 간절하게 바라던 것, 매일 밤 반복하던 기도의 내용, 양육의 본질을 말이다. 중요한 것을 자꾸 까먹는 그곳에는 욕심이 자리 잡아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의 교육에 대해 고민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사교육 정글에 코로나라는 폭우까지 만난 초보 엄마는 아기의 발달, 성장 등에 대해 걷잡을 수 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겐 극성 엄마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아기가 가진 잠재력을 깨워 주고 싶은 열망이 사로잡은 어떤 날엔 정말 그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정말 사교육 없이 자란 사람이다. 남들 다 다니는 피아노 학원 정도 다닌 게 전부 일정도로 공부나 교육에 관련된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어린 시절에는 그게 좋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니 무언가 아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시절에 이런 교육을 미리 받았더라면 지금 나는 조금 더 멋진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이따금씩 나를 뒤덮어 바닥으로 가라앉게 했다. 변명이었다. 나의 노력이 부족했던 지난날을 부모님 앞으로 스윽 밀어버리는 부끄러운 생각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건 아직 미성숙한 나라는 인간의 정제되지 못한 찌꺼기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자꾸만 아기의 교육 로드맵을 완성하고 싶어 진다.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닌 삶을 풍요롭게 할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내 욕심의 체크리스트를 차곡차곡 채우느라 온갖 커뮤니티를 서핑하고 다닌다. 늦은 밤 멀미가 날 정도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헤맨다.  


그러다 이모와의 전화로 문득 깨달은 사실 하나는 이거다. '바라는 건 단 하나. 건강하기만 하거라' 어린 시절부터 내 부모님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없으셨다. 잔소리를 들은 적도 성적으로 혼난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이 점이 나에게는 조금 서운하고, 못내 아쉬웠다. 왜 나한테는 공부 잘하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뭔가 권하거나 채근하지 않을까? 내가 그것들을 성취할 만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신 걸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곤 해서 성인이 된 뒤에도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야 깨닫는다. 엄마 아빠는 그저 작고 여린 아기로 기억되는 내가 건강하고 밝게 웃는 모습이면 되었던 것 같다. 공부를 잘할 필요도, 무언가 뛰어난 재능을 뽐낼 필요도 없이 가장 바라던 것이 충족되어 만족하셨던 게 아닐까? 2.2kg 아기가 세상에 나와 저렇게 재잘거리며 떠드는 그 온기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채워지신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갑자기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육아라는 것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한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육아에 대한 신념은 단 하나였다.


'건강한 생각을 지닌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도와주는 일'


잊지 않아야 한다.

내가 욕심에 사로잡혀 나와 아이를 괴롭히게 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꺼내보아야 한다.

얼굴도 모르던 내 아이를 위해 기도하던 그 마음을.



제 안에 자라나고 있는 아기가 세상에 빛을 보는 그 순간까지 안전하게 보호해주세요.

건강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살고 건강한 생각을 하여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지켜주세요.

그리고 이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며 바른길로 키워낼 수 있는 지혜와 지치지 않을 힘을 저희 부부에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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