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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

엄마와 나 

by 수지로움 Mar 24. 2025

그냥 위로가 고픈날이 있다. 


상하게 어린 시절부터 가까운 사람들에게 쉽게 속앓이를 꺼내어 놓지 못했다. 누구에게 해야 할지도, 어떻게 꺼내야 할지도 모르는 마음이 외로운 아이였다. 그래도 늘 상관없었다. 마음이 슬픈 날은 거실에 앉아 가족들과 티브이를 보며 간식을 먹고 웃고 떠들면 내 세상은 어떻게든 다시 돌아갔다.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이젠 스스로의 마음을 더욱더 터 놓을 곳이 없었다. 어른 노릇을 하느라 부모님께 걱정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나도 괜찮지 않은 날,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며 ‘괜찮아, 걱정 마’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다 커서 우는 딸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늘 씩씩한 어른이어야 했다. 


첫째를 낳고 영 회복이 되지 않는 몸을 이끌고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처럼 산책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엄마를 만난 적이 있다. 아파트 입구에서 엄마 차를 발견하곤 반가워 손을 흔들었다. 엄마도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순간 힘이 났는지 추진력이 생겨 단숨에 멈춰 선 엄마 차까지 도착했다. 나는 그저 그날 엄마가 반가웠고, 엄마가 장난처럼 건네었던 그 말이 그저 웃기기만 했다. 


“아가, 엄마는 설마 내 딸은 아니겠지, 근데 너무 너 같아서 계속 봤어.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네가 맞더라? 세상에~!!”


나는 그 말이 웃겼다. 내 행색이 너무 꼬질해서 엄마가 웃겼나 보다.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일 년 즈음 지난 어느 날 내 앞에서 내색 한번 없던 엄마가 그날을 곱씹으며 말했다. 

“엄마가 그때, 집에 가면서 차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아니? 내 딸이 그렇게 힘이 주욱 빠져서는 한번 털지도 않은 것 같은 꾸깃한 옷을 입고 터덜터덜 걷는 모습을 보는데, 엄마가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나는 또 한 번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하지만 정신이 번쩍 일 만큼 마음이 따끔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엄마가 오실 때나 친정에 가는 날엔 꼭 멋지게 차려입는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가방을 들고, 색이 곱고 예쁜 화장품을 공들여 바른다. 


무언으로 전하는 메시지. 

‘엄마의 자랑, 엄마의 보물이 여기 빛나고 있어요. 그러니 다 큰 딸 걱정은 하지 말고, 편하게 지내세요.’


내가 늘 기대어 있던 그 우직한 안전지대는 어느새 보호구역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보호를 받는 동시에 보호자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예전보다 더 외로워졌다. 마음을 잘 꺼내지 못하는 덕분에 강해져야만 했다. 내 슬픔에 스스로 갇혀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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