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엔 맞는 말이었다.
"해봐야 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반감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책에서 읽은 것과 현장에서 부딪히는 건 전혀 다른 종류의 앎이었다.
전략 교과서에서 "고객 세그먼트를 나눠라"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그걸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영업 미팅에 들어가서 고객이 "우리는 좀 특수해서요"라고 말하는 순간, 교과서의 세그먼트 프레임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고객 앞에서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 론칭 전날 밤에 빠뜨린 것을 발견하는 순간, 회의실에서 나보다 세 배는 경험 많은 사람이 던진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던 그 기분. 책에 적힌 정답과 현장의 정답은 같은 언어를 쓰지만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판단력이 됐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오래 살아남은 데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오래 하면 잘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 법칙이 작동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도메인이 비교적 안정적이어야 하고, 반복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하고, 내가 한 행동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피드백 루프가 존재해야 한다.
체스가 대표적이다. 규칙이 바뀌지 않고, 같은 판을 수천 번 둘 수 있고, 이기거나 지거나 결과가 명확하다. 의사도, 변호사도, 전통적인 제조업의 엔지니어도 비슷했다. 도메인의 근본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았고, 경험이 곧 실력이었던 시대.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시장 조사를 하고, 제품을 만들고, 고객에게 팔고,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사이클. 이 사이클 자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사이클을 많이 돌린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었다. 10년 차가 3년 차보다 나은 이유가 명확했다. 더 많은 상황을 봤고, 더 많은 실수를 했고, 더 많은 패턴을 인식한다. 당연한 거다.
암묵지라는 개념이 있다. 말이나 글로 전달하기 어려운 지식.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감각 같은 것.
경험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을 관찰하면 이게 뭔지 금방 느껴진다. 같은 안건이 올라와도 어떤 사람은 바로 핵심 리스크를 짚고, 어떤 사람은 한참을 헤맨다. 회의에서 분위기가 미묘하게 돌아갈 때, 경험 많은 사람은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끊고, 다음에 따로 잡자"고 자연스럽게 전환한다. 왜 거기서 끊어야 하는지, 이 사람이 무슨 감정인지, 이 논의가 더 가면 어디서 틀어지는지. 그걸 읽는 거다. 설명하라고 하면 "그냥 느낌"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렇다.
왜 이런 지식은 전달이 어려울까. 두 가지 이유다.
첫째, 본인도 자기가 뭘 알고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팀을 맡고 나서야 깨달은 건데, 내가 의사결정을 내릴 때 참고하는 기준 중 상당수는 명문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느낌"이었다. 이 기획이 왜 별로인지, 이 고객이 왜 이탈할 것 같은지, 이 일정이 왜 위험한지. 설명하라고 하면 할 수 있지만, 물어보기 전까지는 그냥 "아는 것"이었다. 정리할 필요를 못 느꼈다. 예를 들어, 팀원이 가져온 기획서를 보고 "이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을 때, 팀원이 "왜요?"라고 물으면 그제야 이유를 조합하기 시작한다. 판단은 이미 끝났는데 논거는 사후에 구성되는 거다.
둘째, 정리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문서를 써도, 매뉴얼을 만들어도, 실전의 뉘앙스를 담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 고객 유형은 가격에 민감하니까 먼저 가치를 충분히 설명하고 나서 가격 이야기를 꺼내라"는 문장은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충분히"가 얼마만큼인지, "가치"를 어떤 순서로 어떤 톤으로 전달해야 하는지는 옆에서 직접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온보딩 매뉴얼 100페이지를 써도 "이 상황에서 3초 안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는 담을 수 없다.
그래서 OJT가 작동했다. 아니, OJT밖에 방법이 없었다. 옆에서 보고, 따라 하고, 실수하고, 피드백받고, 다시 하고. 이 사이클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면서 체득하는 것. 선배가 후배에게, 팀장이 팀원에게 전수하는 방식. 느리지만 확실했다. 그리고 느린 만큼, 이렇게 쌓은 지식에는 자부심이 생긴다.
이런 방식으로 성장한 세대에게 경험은 단순한 이력이 아니다. 정체성이다.
"나도 야근하면서 배웠어." "처음 3년은 원래 힘든 거야." "일단 부딪혀봐, 그래야 늘어."
이런 말들이 꼭 악의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니까. 자기가 걸어온 길이 유효했다는 확신이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실제로 유효했다. 3년 야근하면서 업계의 결을 읽는 법을 배운 사람, 수십 번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무엇이 안 되는지"를 체화한 사람. 그 과정이 만든 전문성은 진짜다.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믿음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정체성에 가깝다. "나는 이렇게 성장했고, 그 과정이 나를 만들었다." 이 서사를 부정하면 자기 커리어 전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저항이 강하다.
문제는 이 확신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어도 방법론은 바뀌지 않는다. "그때도 이렇게 해서 됐으니까 지금도 이렇게 하면 된다." 자기 경험을 일반 원칙으로 착각하는 순간, 학습법은 고정된다.
나도 그랬다. 팀을 맡고 나서 한동안은 "내가 배운 방식"으로 팀원들을 가이드하려 했다. 직접 해보게 하고, 실수에서 배우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방치였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그건 뒤에 가서 이야기하자.
지금 중요한 건 이거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작동하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안정된 도메인. 반복할 수 있는 환경. 충분한 시간. 그 전제가 무너지면?
다음 장에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