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이 작동하려면 전제가 필요했다. 안정된 도메인, 반복할 환경, 충분한 시간. 그리고 그 위에서 돌아가는 학습 구조, OJT.
지금 이 전제가 세 방향에서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요즘 팀원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차이는 정보를 대하는 태도다.
이전 세대는 정보를 "찾으러" 갔다. 서점에 가고, 선배에게 물어보고, 시행착오를 거쳐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정보를 얻는 과정 자체가 학습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불편했고, 그 불편함이 탐색의 동력이었다.
스마트폰과 함께 자란 세대는 다르다. 정보가 늘 손 안에 있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검색하면 됐다. 아니, 검색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알고리즘이 내가 관심 있을 법한 것을 먼저 보여주니까. 정보는 "찾는 것"이 아니라 "흘러오는 것"이 됐다.
이걸 나태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환경의 차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물이 흔한 곳에서 자란 사람에게 "우물을 직접 파야 물의 가치를 안다"고 말하는 건,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문제는 이 세대가 일터의 중심이 되고 있다는 거다. 이미 됐다. "정보를 찾는 수고" 자체가 학습이었던 시대의 OJT를 이 세대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학습이 아니라 비효율로 느껴진다. "왜 이걸 직접 해봐야 하는지" 납득이 안 된다. 납득이 안 되면 동기가 생기지 않고, 동기가 없으면 경험이 체화되지 않는다.
세대를 탓하는 게 아니다. 1만 시간의 첫 번째 전제, "배우는 사람이 탐색하고 반복하면서 체득한다"는 구조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거다.
세대 변화만으로도 기존 학습법은 흔들리고 있었다. 거기에 AI가 가속도를 붙였다.
비즈니스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말은 이제 클리셰일 정도로 많이 쓰이지만, AI를 워크플로우에 적용해본다면 확실히 체감이 다르다. 한 달 걸리던 분석을 하루 만에 할 수 있게 됐다. 일주일짜리 기획 초안이 두 시간이면 나온다. 이 변화는 우리 회사만의 일이 아니다. 경쟁사가 기능을 내놓는 주기가 절반으로 줄었다. 의사결정의 사이클이 빨라졌고, 그에 따라 "판단할 준비가 된 사람"의 기준도 높아졌다.
이전에는 3년차쯤 되면 어느 정도 독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첫해에 관찰하고, 둘째 해에 따라 해보고, 셋째 해에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런 시간이 허락됐다. 지금은 아니다. 6개월 안에 성과를 내야 하고, 1년차에 프로젝트를 리드해야 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다.
"경험을 쌓을 시간"이라는 전제 자체가 사치가 됐다. 그리고 이건 특정 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조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AI가 만든 또 하나의 변화가 있다. 경험 많은 사람과 경험 없는 사람의 실행 속도 차이가 줄어들고 있다. 10년차가 감으로 잡아내던 것을 이제 AI가 데이터로 보여준다. 숙련자의 "직감"이 풀리지 않는 블랙박스가 아니게 됐다. 이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경험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가? 아니면 경험의 종류가 달라져야 하는 건가?
1만 시간의 두 번째 전제, "충분한 시간을 들이면 숙련된다"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시간을 들일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시간을 들여도, 그 사이에 게임의 규칙 자체가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다.
팀을 이끌어본 사람은 안다. 교육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신규 입사자가 들어온다. 온보딩 자료를 만들어 두었다. 첫 주에 읽고, 둘째 주부터 실무에 투입한다. 선배 한 명을 붙여주고, 모르는 건 물어보라고 한다. 3개월쯤 지나면 어느 정도 적응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현실은 다르다.
선배도 바쁘다. 자기 일 하면서 후배를 가르치는 건 부담이다. 질문이 올 때마다 멈추고 설명하는 게 반복되면, 슬슬 "이건 직접 해보면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이 나온다. 악의가 아니다. 진짜 바빠서 그런 거다. 또 설명해본 사람은 아는데, 같은 걸 세 번째 설명하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후배는 그걸 눈치챈다. 질문하기 미안해지고, 혼자 끙끙거리다가 시간을 낭비하고, 결과물의 퀄리티는 떨어지고, 그걸 다시 고치느라 선배의 시간이 더 들어간다.
악순환이다. 그런데 이 악순환의 원인은 사람이 아니다. 구조다.
OJT가 작동하려면 가르치는 사람에게 여유가 있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에게 실수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조직에서 여유 있는 사람은 없다. 실수할 시간도 없다. 모든 프로젝트가 "어제까지 필요한" 것들이다.
결국 OJT는 "시간이 남을 때 하는 것"이 된다. 시간은 영원히 남지 않는다.
한 가지 더. 가르치는 사람의 지식 자체가 구조화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앞 장에서 이야기한 암묵지의 문제다. 본인도 자기가 뭘 알고 있는지 정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걸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옆에서 보고 배워"가 되는 이유다. 전달할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거다.
1만 시간의 세 번째 전제, "경험자가 경험을 전수할 수 있다"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지고 있다.
하나, 배우는 사람이 달라졌다. 정보 환경 자체가 바뀌면서 "경험을 통해 몸으로 배우는" 방식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
둘, 시간이 사라졌다. AI가 비즈니스 속도에 가속도를 붙이면서 "경험을 쌓을 시간"이라는 전제가 없어졌다. 3년 걸려 배울 것을 3년 동안 기다려줄 조직이 없다.
셋, 가르치는 구조가 부서졌다. 선배도 바쁘고, 암묵지는 정리되지 않았고, OJT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가 겹치면, 기존의 학습 방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느린 방법이 나쁜 게 아니라, 느린 방법밖에 없는 게 문제다.
그러면 경험이 없는 사람은? 경험 없이도 성과를 내야 하는 사람은 이 게임에서 바로 제외되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다. 전제가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출발점이 생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