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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Oct 27. 2022

불혹? 아니 사십춘기!

불혹.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는 나이. 공자는 마흔에 그런 경지를 얻었다고 했지만 나의 마흔은 방황의 절정기였다. 요즘 한창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중2 첫째 아들만큼이나 살아가는 일이 혼란스러웠다. 30대 중반에 퇴사와 창업을 경험하면서 시작된 방황은 마흔이 가까워질수록 고조됐다. 사실 사십춘기는 마흔둘이 된 지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긴 터널 같은 것이다. 터널 속에서 불을 비춰가며 출구를 찾아가는 과정은 간혹 고통스러웠지만, 뒤집어 보면 나름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기회가 되곤 했다. 


방황하던 나를 잡아준 것은 글쓰기였다. 불안할 때마다, 일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무작정 글을 썼다.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은 절실함이었다. 쓰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모를 때, 일단 노트북을 펼치고 생각나는 대로 자판을 두드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에 빠질 때도 글쓰기는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였다. 글을 쓰다 보면 휘몰아치던 두려움과 불안한 감정이 잔잔해지고, 고요해진 마음의 표면 위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떠오르곤 했다. 그 한 가닥을 잡고 실행에 옮기다 보면 꼬여 있는 실타래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대신해서 인생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줄 수 없다.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글을 쓰는 것만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다.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생각을 받아 적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됐다. 요즘에도 기분이 싱숭생숭하거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마다 글을 쓴다.


10대 사춘기에도 글을 썼을까? 부모님의 혈액형을 잘못 알고서 ‘내가 입양됐거나 출산과 함께 병원에서 부모가 바뀐 것 아닌가’라며 혼자서 고뇌하던 시절이 있다. 그때 1년 정도 나의 존재를 캐묻는 일기를 거의 매일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사춘기 시절부터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을 살피며 꾸준히 글을 썼다면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글쓰기보다는 착한 장남으로서 공부만 열심히 했기에, 논리적인 글을 쓰는 기자가 되었다. 타인을 취재해서 나를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글을 쓰다 보니,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신문사를 나와 스스로 삶과 일터를 꾸리면서, 서툴지만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다. 


시골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도시는 온갖 서비스로 꽉 차 있지만, 시골은 온통 비어 있다. 시골 창업은,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만 비어 있는 무언가를 채우는 일이다. 도시에서는 흔한 창업 아이템도 시골에서는 매력적이다. 시골과 창업이 만나면,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다. 출퇴근 시간도 일하는 방식도 스스로 정하기 나름이다. 7년간 시골 창업을 경험하면서 일하는 방식은 더욱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자유롭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얽매는 것이 줄어들면 나태해지기 쉽다. 매 순간 스스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직도 의욕이 없는 날에는, 백수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안해하며 하루를 보낸다. 시골이라고 해서 ‘창업’이라는 행위에 내포된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불안,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다. 그 역시 시골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방식에 맞게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서른 살에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산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퇴직과 두 번의 창업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삶은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은 흔들린다. ‘매출이 줄어들지 않을까? 적자가 나면 어떻게 하나?’ 불안한 생각은 그치질 않는다. 흔들리는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사십춘기를 보내며 깨달았다. 흔들리는 추처럼 진동을 에너지 삼아 한 발짝씩 내딛는다. 다만 그 한 발짝이 두려움에 의한 것인지, 스스로 원해서 하는 행동인지 살핀다. 


도저히 하루하루를 버티기 정도로 힘들 때에는 또다시 변화를 시도한다. 신문사를 나올 때도, 첫 번째 창업한 회사를 그만 둘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애벌레가 고치를 틀고 나비로 훨훨 날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깨고 탈피해야 한다. 주어진 상황을 벗어나야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진다. 요즘에도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힘겨운데, 또 무엇이 변하려고 그러나 보다. 그저 변화에 맡기기로 한다. 


* 이미지 출처 : Photo by Sorina Binde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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