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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Oct 11. 2020

프리라이팅 넘어서기

시골글쓰기강의

"저도 프리라이팅 같은 걸 했던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받아 적었죠. 나름 꾸준히 했는데 글쓰기가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계속해서 자기반성만 하는 것 같고... 그러다가 그만둔 적이 있어요."


프리라이팅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들었던 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글을 처음 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로 강의를 하다 보니, 글쓰기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해온 분이 질문해 오면 도움이 될 만한 답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강의에서 주로 글 쓰는 과정을 단계별로 보여주면서 설명하는데, 그 단계와 형식에 갇힐까봐 자유로운 글쓰기 방법인 '프리라이팅'을 함께 알려준다. 도저히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어떤 단계를 거쳐 글이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만, 그 단계에 갇히면 글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이럴 때 좋은 도구가 '프리라이팅'이다. 프리라이팅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아무런 자기 검열 없이(심지어 맞춤법도 상관없이) 손을 멈추지 않고 받아 적는 글쓰기 방법이다. 이렇게 쓰다 보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말, 프리라이팅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말을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얻은 생각과 글감을 다음 프리라이팅에서 발전시킨다.


프리라이팅은 누구에게 보여줄 글이 아니니 부담 없이 쓸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기 힘들다. 처음에는 10분간 프리라이팅도 힘들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30분 간 쉬지 않고 프리라이팅을 할 수 있게 된다. 요즘에는 시간을 정하지 않고도 습관처럼 프리라이팅을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어떻게 해야 프리라이팅 한 글을 독자에게 공개할만한 글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내 브런치의 '작가의 서랍'에는 700개가 넘는 글이 공개되지 못한 채 쌓여 있다. 대부분 프리라이팅을 통해 쓴 글이다. 하지만 프리라이팅으로 시작해서 독자에게 공개할 만한 글로 발전시킨 경우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다.


프리라이팅을 하다 보면 '내가 쓸 데 없는 짓을 매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을 넘어서지 못하고 프리라이팅을 그만둔다. 그래도 꾸준한 프리라이팅은 나름의 효과가  있다. 프리라이팅은 머리를 맑게 하고, 글 쓰는 감각을 키우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준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수단이나 글쓰기 연습으로 프리라이팅은 효과가 분명하지만, 글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이나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서랍 속에 갇혀 있는 글이 어떤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그냥 그 행위 자체로만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 유의미한 글쓰기 방법일까?


그런 고민을 하다가 어느 날 그동안 프리라이팅으로 썼던 글들을 작가의 서랍에서 꺼내 읽었다. 최근에  프리라이팅은 (내가 썼지만) 내가 읽기에도 힘들 정도로 정돈이 안 돼 있었다. 그 글을 가지고 어떻게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써야 할지 도통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1년 전에 프리라이팅을 한 글들은 달랐다.

'어, 이 글은 조금만 다듬으면 발행할 수 있겠는 걸!'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각종 보석으로 세공을 기다리며 반짝이고 있는 원석. 그동안 이 원석을 알아보지 못했다. 원석으로 반지나 목걸이를 만드는 세공 과정에 비유하면, 최근에 전 쓴 글은 어떻게 세공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원석의 가치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1년 전에 쓴 글은 어떻게 세공하면 보석으로 만들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1년 동안 묵혀놓은 글을 어느 정도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된 것인지, 아니면 1년 동안 내 생각이 자란 것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간의 미학은 글쓰기에도 통했다.


요즘에는 그동안 써 놓은 700개의 프리라이팅한 글 중에서 원석을 찾아 세공해서 독자들이 읽을만한 글로 만드는 재미에 빠져있다. 예전에 썼던 프리라이팅을 바탕으로 처음부터 다시 쓰며 글을 다듬는다. 물론 이 과정도 쉽지 않다. 원석을 아무리 바라보고 있어도 어떻게 다시 써야 할지 모를 때도 많다. 결국 그때부터는 많은 작가들이 이야기하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시간'과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프리라이팅 했던 글 중에 일부를 소개할까 한다. 지금 쓴 글의 원석이 된 글이다.


"프리라이팅에서 벗어나는 방법. 프리라이팅은 원석을 만드는 일이다. 생각보다 원석을 만드는 일은 쉽다. 그냥 내면의 목소리를 걸림 없이 받아 적으면 원석이 만들어진다. 그래, 이 원석을 구슬에 비유하면 좋겠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프리라이팅 수준을 넘어서려면 그 구슬을 꿰어야 한다. 그 작업이 귀찮고 힘들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일단 꿰어야 한다."


내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프리라이팅으로 만든 원석, 즉 구슬이 서말이 아니라 700개가 넘게 있는데, 이 구슬을 꿰어서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는 '보배'로 만들지 않고 있었다. 보배로 만들 만큼 구슬(원석)이 형편없어서 꿸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내가 이 구슬을 잘 꿰어서 글쓰기 책 한 권을 낸다면, 구슬을 꿰는 방법도 독자들에게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글쓰기 방법이란 것이 있을까? 일단 나는 구슬을 하나하나 꿰어봐야겠다. 그것도 꾸준히 해봐야 알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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