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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명진 Nov 03. 2019

틈날 때마다 글 쓰는 방법  '프리라이팅'

나는 부지런하게 글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써야 하는 글을 쓸 때는 마감까지 최대한 미뤘고, 쓰고 싶은 글을 쓸 때도 머릿속에서 구성이 온전히 그려져야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한 문장, 한 문장을 꾹꾹 눌러쓰는 스타일이었다. 글도 무거워지고 글을 쓰는 내 마음도 무거웠다. 그 부담감 때문에 글을 시작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요즘에는 틈만 나면 글을 쓴다. 점심을 먹고 잠깐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잔 마실 여유가 있다면 무조건 노트북을 펼치고 두드린다. 하나의 주제를 잡고 글을 써 내려가기보다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무작정 받아 적는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여러 소재가 뒤죽박죽인 글이 나온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뚝배기에 계란을 풀고 가열하면서 숟가락을 저으면 몽글몽글 뭉쳐지는 계란찜 요리처럼, 프리라이팅을 하다 보면 글 뭉텅이가 몽글몽글 하얀 화면 위로 떠오른다. 그 글 뭉텅이를 소재로 한 편의 글로 발전시킨다.


프리라이팅(freewriting). '의식적 흐름 글쓰기'라고도 한다. 말 그대로 머릿속에 흐르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 적는 방식이다. '콘텐츠 마케팅'으로 유명한 조 풀리지의 책 '콘텐츠로 창업하라'에서 프리라이팅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다. 이 책에 인용된 구절을 소개한다. '구원으로서의 글쓰기(The True Secret of Writing)'의 저자 내털리 골드버그가 제시한 프리라이팅의 규칙이다.

 



- 제한시간을 정하라. 정해진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멈춰라.

- 정해진 시간 내에는 쉬지 말고 손을 움직여라. 손놀림을 멈추고 허공을 바라본다거나 지금까지 쓴 내용을 읽는다거나 하지 마라. 빠르게 쓰되 서두르지는 마라.

- 문법, 철자법, 구두점, 적절성이나 문체 등에 신경 쓰지 마라. 자기 말고 누구도 읽을 필요가 없는 결과물이다.

- 주제를 벗어나거나 아이디어가 동나도 아무튼 계속해서 글을 써라. 필요하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도 되고 머릿속에 두서없이 떠오르는 내용을 써도 무방하다. 그도 아니면 낙서라도 해라. 아무튼 손을 계속 움직이게 해 줄 무엇이든 하라.

- 쓰는 동안 지루하거나 불편함을 느낀다면, 자신을 괴롭히고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고, 그것에 대해서 써라.

- 시간이 다 되면 지금까지 쓴 내용을 훑어보고, 다음 프리라이팅 시간에 계속하거나 다듬을 가치가 있다 싶은 아이디어나 문구가 있는 구절에 표시하라.

 


마지막 규칙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프리라이팅은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소재가 없어 글을 시작하지 못할 때 유용하다. 이제는 '아! 무얼 쓰지?'라고 고민하면서 하얀 화면에 깜빡거리는 커서만 보고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따라 적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가 떠오른다. 더 깊이 쓸 수 있는 소재라면 메모해둔다. 그 소재를 공유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한 편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굳이 글 쓰고 싶은 소재가 없더라도 틈만 나면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멈추지 않고 10분간 쓰기도 힘들었다. 10분간 프리라이팅을 하면 A4용지 1장(200매 원고지 8장 분량)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다.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기 위해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도 글로 옮겼다. 예를 들어 '아~ 글을 쓰다 보니 배가 아프다. 아직 10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프리라이팅을 멈추고 화장실을 갈까? 아니면 좀 더 참고 10분을 채워볼까?' 이런 생각도 글로 쓴다.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를 멈추고 싶다가도 그 순간의 유혹을 이겨내면 계속해서 쓰고 싶어 진다(프리라이팅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도 그대로 글로 옮겨 적는다.) 요즘은 30분도 금방 지나간다. 단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없어야 한다. 전화가 오거나 카톡, 페이스북 메시지가 뜨면 확인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기 힘들다(그런 욕구까지 그냥 글로 옮긴다.) 가능하다면 온라인도 끄고 핸드폰도 무음으로 설정하기를 추천한다. 온전히 30분간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나면 뿌듯하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


Photo by Stanley Dai on Unsplash


이런 기법이 글쓰기에만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글쓰기 수업에서 가끔 수강생에게 프리라이팅을 추천하는데, 미술을 전공했다는 한 수강생이 '프리라이팅'에 대한 설명을 듣고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지 물어봤다.


"미술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있거든요. 그릴 소재를 정하지 않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붓이나 연필로 자유롭게 표현하면서 정말 그리고 싶은 소재를 찾거든요. 프리라이팅이랑 너무 비슷해서 놀랐어요."


글과 그림, 예술은 통하나 보다. 예술이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라면,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들여다보는 도구가 프리라이팅이다. 나를 들여본다는 점에서 명상과도 가깝다. 특히 복잡한 생각을 글 쓰는 속도로 천천히 풀어내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글로 표현한다. 흘러가는 생각을 글로 받아 적다 보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때보다 더 명확하게 내 생각을 알 수 있다. 생각과 글쓰기의 속도 차이 때문이다. 생각은 가벼워서 이리저리 빠르게 흩어지지만, 프리라이팅을 하면 글 쓰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생각하게 되고 휘발되던 생각이 글로 응집된다.


이밖에도 프리라이팅이 가져다주는 이로운 점은 많다. 다음 글에서 나만의 프리라이팅 활용법에 대해 설명하겠다. 예고하자면, 프리라이팅이 습관이 되면 훨씬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어서 다음 글을 써서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일단 프리라이팅을 해야 겠다.


표지 이미지 Photo by Fuu J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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