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나 vs 화내는 나
번화가를 걷다 보면 아주 높은 확률로 ‘도를 아십니까’ 포교자들에게 잡힌다.
나는 내가 봐도 말 걸기 좋게, 만만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냥 거절하기엔 미안해서 옅은 미소를 띠며 최대한 교양 있게 사양하곤 하지만,
기분이 안 좋거나 갈 길이 바쁠 때 끈질기게 따라붙으면
나도 모르게 신경질이 나서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럴 때 나를 보는 그들의 표정은 마치 ‘네가 이럴 줄은 몰랐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가끔 내 인상만 보고 내 성격을 마음대로 판단하고 마구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들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웬만하면 부탁도 다 들어주고 최대한 성의를 보인다.
나는 나름대로 인간관계 속에서 최선을 다한 건데,
그들에겐 그게 ‘호구의 싸인’으로 느껴지는지 슬슬 요구가 과해지면 가차 없이 손절한다.
손절하는 게 자랑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다.
나는-얼굴은 안 그렇게 생겼는데-예민하다.
미묘하게 바뀌는 상황의 공기, 사람들의 미세한 표정, 말투까지도
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아도 다 느껴져서 안절부절하게 되니 너무 피곤하다.
어느 자리에 있으면 마치 레이더가 가동되는 것처럼 사방의 움직임이 다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걸 일일이 참견할 수 없고, 챙길 수 없으니 그저 모른척하거나 꾹꾹 참을 뿐.
계속 참으면서 내색하지 않으니, 남들 눈에는 내가 온순하고 착하게 보이겠지.
서로 불편해지는 것도 싫고, 뒷수습하기도 귀찮아서 말을 안 하는 것뿐인데.
그렇게 분출하지 못한 생각의 찌꺼기, 감정의 찌꺼기들이 마음에 켜켜이 쌓여
거대한 다이너마이트가 되어 결국 때때로 폭발한다.
폭탄을 끌어안고 사니 늘 머리가 아프고 답답하다.
차라리 확 내지르는 성향이면 속이라도 시원하겠는데, 이렇게 타고난 거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착하지도, 못되지도 않은 이중적인 나.
오늘도 갈림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성숙한 인격의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