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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와 ‘연애편지’

교과서의 기억 : 습관적 기억

 

 우리는 어떤 대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기억해요.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 봐요. 글을 읽으면 그것은 기억되죠. 그런데 ‘교과서’를 읽어서 그것을 기억하는 것과 ‘연애편지’를 읽어서 그것을 기억하는 것은 다르죠. ‘교과서’의 기억과 ‘연애편지’의 기억. 이것이 우리가 어떤 대상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자를 ‘습관적 기억’으로, 후자를 ‘자발적 기억’으로 이름붙일 수 있어요. 먼저 ‘습관적 기억’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봐요.     


 학습의 기억은 외워서 습득된 것인 한 모두 습관의 성격을 가진다습관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동일한 노력의 반복에 의해 습득된다습관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전체 행동을 우선 해체하고 다음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요구했다마지막으로 신체의 모든 습관적 훈련과 마찬가지로 최초의 추진력이 전체를 흔드는 기제 속에동일한 순서로 이어지며 동일한 시간을 점하는 자동적 운동의 닫힌 체계 속에 축적되었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이 말하는 “학습의 기억”이 바로 ‘습관적 기억’이에요. ‘습관적 기억’은 과거의 ‘상’들의 보존이죠. 순수하게 그냥 보존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 ‘습관적 기억’은 암기하는 거예요. 시험 기간에 교과서 외우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것도 우리의 기억이잖아요. 이는 “동일한 노력의 반복에 의해 습득”되는 거죠. 말 그대로 습관이 되는 거죠. 애국가를 반복해서 다 외우면 필요할 때 습관처럼 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습관적 기억’은 ‘공간화된 시간’ 안에서 행동하고 반복하는 거예요. 교과서를 어떻게 외우죠? 교과서 안의 공간(1페이지부터 30페이지까지) 속에서 외우잖아요. 혹은 빽빽이 알죠. 빈 연습장(공간)에 외울 것들을 계속 쓰면서 외우는 거요. 이렇게 ‘습관적 기억’은 ‘공간화된 시간’ 속에서 행동하고 반복하는 거예요. 그게 ‘습관적 행동’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기억은 “자동적 운동의 닫힌 체계 속에서 축적”되게 마련이에요.    

  

 이는 어려운 말이 아니에요. 교과서를 외우고 나면 그것을 기억할 때 엄청나게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한가요? 아니죠. 그냥 ‘자동적’으로 튀어나오잖아요. 하지만 그것은 ‘닫힌 체계’죠. 그 기억은 ‘자동적’으로 튀어나오지만, 그 기억(교과서)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새롭게 해석되는 건 없잖아요. 그냥 습관적으로 동일하게 반복하게 될 뿐이에요. 우리는 모두 이런 ‘습관적 기억’을 갖고 있죠.      


 이 기억을 쌓으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행동을 우선 해체하고 다음으로 재구성”해야 해요. 시험 기간에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애요? 지금 읽고 있는 소설책이나 연애편지는 내려놔야 하잖아요. 그런 행동들을 해체하죠. 그다음에 공부해서 새로운 기억(교과서)이 재구성되잖아요. 그렇다고 이 ‘습관적 기억’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에요. 운동이 ‘습관적 기억’으로 자리 잡은 사람을 생각해 봐요. 그는 그 ‘습관적 기억’은 체육관을 가는 “최초의 추진력”만 있다면, “동일한 순서로 이어지며 동일한 시간 운동”을 하게 될 거예요. ‘습관적 기억’은 때로 우리네 삶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죠.      



연애편지의 기억 : 자발적 기억

     

 그렇다면 ‘자발적 기억’은 어떤 것일까요? 


 반대로한 특수한 독서의 기억가령 두 번째나 세 번째의 독서는 습관의 성격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그것의 상은 반드시 처음부터 기억에 새겨지는데다른 독서는 정의 자체에 의해 다른 기억을 이루기 때문이다그것은 내 생애의 한 사건과 같다따라서 그것은 날짜를 지니며 반복될 수 없음을 본질로 가진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이 말한 “한 특수한 독서의 기억”이 바로 ‘자발적 기억’이에요. 이는 사랑하는 이가 써준 편지를 읽는 것을 생각하면 돼요. 한 번 읽은 그 편지가 잊힐까요? 절대 잊히지 않죠. 하지만 그것은 시험 기간에 교과서를 외워서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죠. 무엇이 다를까요? 마치 시험을 보기 위해 교과서를 외우는 것처럼, 그 편지를 반복해서 읽을 때 매번 똑같은 내용만을 파악하는 건가요?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번도 연애를 안 해 본 거예요.      


 ‘연애편지’는 두 번, 세 번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읽더라도, “습관의 성격을 전혀 가지지” 않죠.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연인의 다양한 표정과 목소리, 함께 했던 수많은 순간이 “매번 다른 기억을 이루기 때문”이죠. 그 편지의 기억은 “내 생애의 한 사건”과 같죠. ‘연애편지’의 기억은 ‘교과서’(학습)의 기억과 달리, 나에게 의미 있는 “날짜를 지니며 따라서 반복될 수 없는” 기억이에요.     



 이 ‘자발적 기억’은 (‘공간화된 시간’이 아니라) 순수한 시간, 즉 ‘지속의 시간’ 속에서 이뤄져요. ‘지속의 시간’, 즉 음악을 들을 때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은 그런 시간이죠. ‘지속의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수많은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고 또 해석하게 만들잖아요. ‘연애편지’ 읽을 때를 생각해봐요.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이 편지를 썼는지 상상해 보고,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아니 쉼표 하나까지도 이렇게도 해석해 보고, 저렇게도 해석해 보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매번 새롭게 읽히는 거죠.      


 ‘자발적 기억’을 ‘우발적 기억’이라고도 하거든요. 이는 ‘자발적 기억’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 ‘자발적 기억’이 촉발하는 상상·해석은 매 순간 우발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 따라 ‘연애편지’는 다르게 읽혀요. 사랑할 때 읽는 ‘연애편지’와 헤어지고 나서 읽는 ‘연애편지’는 완전히 다르죠. 또 스무 살일 때 읽는 ‘연애편지’와 마흔 살일 때 읽는 ‘연애편지’는 완연히 달라요. 삶이 순탄할 때 읽는 ‘연애편지’와 부모가 죽었을 때 읽는 ‘연애편지’는 완전히 다르게 읽히죠.      


 꼭 ‘연애편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몇몇 작가들이 있어요. 그들의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져요. 시험 때문에 암기하려고 계속 읽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요. ‘교과서’는 읽을 때마다 똑같아요. 하지만 ‘자발적 기억’은 비결정적 운동의 열린 체계예요. 제가 좋아하는 저자의 글은 제게 ‘연애편지’ 같은 글이에요. 그래서 읽을 때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또 상상하게 돼요. 즉 결정되어 있지 않은 거죠. 그래서 그 기억(자발적 기억)은 항상 열려 있는 기억인 거죠.     


‘교과서’와 ‘연애편지’의 차이

     

 사람들은 두 기억독서의 기억과 학습의 기억이 단지 더하거나 덜한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서는점점 더 잘 암기되는 학습으로서가 아니라 매번 새로워지는 것으로 고려될 경우절대적으로 자신을 충족시켜 주며그것이 생겨난 모습 그대로 존속하며 그것이 동반하는 모든 지각과 함께 내 역사에 환원될 수 없는 한순간을 구성한다심지어 의식은 우리에게 이 두 종류의 기억들 사이에 어떤 심층적인 차이즉 본성의 차이를 드러내 준다고 말할 수도 있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교과서(학습)’와 ‘연애편지(독서)’는 각각 기억되겠죠. 그 두 기억의 근본적인 차이는 뭘까요? 

단지 ‘교과서’가 좀 덜 기억되고, ‘연애편지’가 좀 더 잘 기억되는 차이일까요? 이는 결과론적 차이일 뿐, 근본적인 차이는 아니에요. 베르그손은 ‘학습(교과서)’과 ‘독서(편지)’ 사이에는 “어떤 심층적인 차이, 즉 본성의 차이”가 있다고 말해요.      


 ‘연애편지(독서)’는 매번 새롭게 기억되잖아요. 이 ‘자발적 기억’은 “절대적으로 자신을 충족시켜 주며” 또한 “그것이 동반하는 모든 지각과 함께 내 역사에서 환원(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한순간을 구성”하게 되죠. 반면 ‘교과서(학습)’, 즉 ‘학습의 기억’에는 이런 요소들이 전혀 없죠. 그것은 매번 동일하게 반복되기에 전혀 새롭지 않죠. 그러니 당연히 자신을 절대적으로 충족시켜 주지도 못하죠. ‘교과서(학습)’를 아무리 반복해서 읽고 외운다고 마음이 가득 차지는 않잖아요. 이 기억은 다른 ‘교과서’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죠. 그러니 ‘학습의 기억’이 자신의 역사에 대체 불가능한 한순간이 될 리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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