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 기억’과 ‘자발적 기억’의 차이
‘교과서’와 ‘연애편지’, 즉, ‘습관적 기억’과 ‘자발적 기억’은 다른 기억이지만, 이 둘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이 두 기억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요?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모든 지각은 시발적인 행동으로 연장된다. 상들이 일단 지각된 후 그런 기억으로 고정되고 일렬로 배열함에 따라, 그것을 계속하던 운동들은 유기체를 변화시키고 신체의 새로운 행동의 성향을 창조한다. 이처럼 신체에 놓이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경험이 형성된다. 그것은 외부 자극에 대한 점점 더 다양하고 더 다수의 반응을 가진, 끊임없이 증가하는 수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완전하게 준비된 대응을 갖춘, 완전하게 축조된 일련의 장치들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우리가 태어나서 처음 사과를 지각했다고 해봐요. 그 지각은 “시발(시작)적인 행동”(사과를 먹는 행동)을 낳겠죠. 마찬가지로 종이, 연필, 컴퓨터, 냉장고 등등의 지각은 특정한 행동을 시작하게 만들겠죠. 그렇게 “상(사과·연필·냉장고…)들이 일단 지각”되고 나면, 우리의 몸에 “그런 기억(먹는, 쓰는, 음식을 저장하는…)으로 고정되고 일렬로 배열”되겠죠. 그리고 그런 운동들이 반복되면 “유기체를 변화시키고 신체의 새로운 성향을 창조”하게 될 거예요. 이는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죠.
우리는 누구나 태어났을 때는 갖고 있지 않았던 신체로 창조되잖아요. 즉 사과를 보면 먹으려고 하는, 연필을 보면 글을 쓰려는, 냉장고를 보면 음식을 저장하려는 새로운 성향을 보이는 신체가 창조되잖아요. 그렇게 더 많은 ‘상’들을 지각하고 기억하다 보면. 우리는 “점점 더 다양하고 더 다수의 반응을 가진 완전하게 준비된 대응을 갖춘, 완전하게 축조된 일련의 장치”로서의 몸을 갖게 되죠. 여기까지가 ‘습관적 기억’이 우리 몸에 자리 잡는 과정이에요.
‘습관적 기억’에서 ‘자발적 기억’으로
우리는 그 장치들이 작동되는 순간 그것들을 의식하며, 현재에 축적된 그 모든 과거 노력의 의식 또한 분명 기억이지만, 첫 번째 것과는 심히 다르다. 이는 항상 행동을 향해 긴장되어 있고, 현재 앉아서 미래만을 바라보는 기억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습관적 기억’이 자리 잡은 몸이 작동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지금 습관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죠. 또한 그 습관이 생기기까지 “현재에 축적된 그 모든 과거 노력의 의식 또한 분명 기억”하죠. 쉽게 말해, 우리가 집에 들어오면 습관적으로 TV를 켠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종종 그 행동이 습관적이라는 사실 의식할 수 있잖아요. 또한 집으로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TV를 틀게 만든 “현재에 축적된 그 모든 과거 노력”(‘10년 동안 내가 매일 집에 오면 아무 생각이 없이 TV부터 틀었구나’) 역시 의식할 수 있죠.
이러한 의식 또한 분명한 기억이지만, 이는 “첫 번째 기억(습관적 기억)과는 심히 다른” 기억이죠. 이는 ‘자발적 기억’이에요. ‘자발적 기억’은 습관적이지 않기 때문에(습관적 기억을 성찰하기 때문에) “항상 행동을 향해 긴장되어 있고, 현재 앉아서 미래만을 바라보는 기억”이에요. ‘10년 동안 내가 TV만 보고 살았구나’라는 ‘자발적 기억’은 다른 행동을 하게끔 긴장하게 만들고, 이는 TV를 끔으로써 현재로부터 조금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게 해주는 기억이니까요.
현재 운동이 이루어지는 엄격한 질서와 체계적 성격에서 재발견한다. 사실 그것(자발적 기억)은 더 이상 우리로 하여금 과거를 표상하게 하지 않고 과거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기억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상들을 보존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순간까지 그것의 유용한 결과를 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이 ‘자발적 기억’은 “현재 운동이 이뤄지는 엄격한 질서와 체계적 성격에서 재발견”되는 거예요. 우리가 습관적으로 TV를 켜는 현재 운동은 수없이 반복되었던 엄격한 질서와 체계 아래서 이뤄지잖아요. 그런데 ‘자발적 기억’은 바로 그 순간 아래서 촉발돼요. 매번 TV를 켜는 습관(엄격한 질서와 체계) 아래서 ‘아, 지금 내가 또 습관적으로 TV를 켜는구나’라는 기억을 재발견하게 되잖아요.
연애편지로 교과서에 생명을 불어넣는 삶
그래서 ‘자발적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표상하게 하지 않고 과거를 작동시킨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자발적 기억’은 단순히 내가 과거에도 항상 TV를 켰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작동시켜 현재에 변화를 일으키게 하니까요. ‘자발적 기억’이 “기억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과거를 보존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순간까지 그것의 유용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습관적 기억’이 단순히 과거를 보존하는 것이라면, ‘자발적 기억’은 그 ‘습관적 기억’의 토대 아래서 과거를 작동시켜 현재를 조금 더 유용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죠.
‘교과서’에서 ‘사랑은 나보다 너를 더 아끼는 것’이라고 배웠다고 해봐요. 이는 ‘습관적 기억’으로 우리 마음에 자리 잡겠죠.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려 할 때, 습관적으로 그 사람을 배려하게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연애편지’를 쓸 때 (혹은 사랑하는 이의 연애편지를 읽게 될 때) 깨닫게 되죠. 내가 해준 배려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습관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교과서’로 배운 사랑은, ‘습관적 기억’은 그저 과거를 보존하는 것뿐이에요. 진정한 사랑은 ‘연애편지’에 있죠. 온 마음을 담아 쓰고 읽는 그 ‘연애편지’ 그 ‘자발적 기억’은 ‘습관적 기억’의 토대 아래서 과거를 다시 작동시켜 현재를 조금 더 유용한(사랑하는) 상태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교과서’는 필요 없다"고 말해서도 안 되지만, 그 "‘교과서’는 오직 ‘연애편지’ 속에서만 지금 살아 숨 쉬게 된다"는 사실 역시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겁니다. ‘연애편지’로 ‘교과서’에 생명을 불어넣는 삶. 그것이 사랑이고, 인간다운 삶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