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케arche’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우회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아르케’는 그리스어로 ‘시작’ ‘원리’ ‘기원’을 의미한다. 이는 동사 ‘archo’(군대를 싸움으로 인도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선두에 서다’ ‘지휘하다’ ‘지배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무정부주의anarchism는 ‘아르케arche’가 ‘없다(혹은 부정한다)an-’는 의미를 가진다) 고대 이오니아Ionia 자연철학자들은, 이 ‘아르케’를 여러 현상이 의존하는 '근본원리' 혹은 '근본 물질'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의 많은 철학자들이 이 ‘아르케’ 대해서 말했다. 철학의 시조인 탈레스는 ‘물’을 세계를 탄생시킨 근본 물질이자 원리, 즉 ‘아르케’로 보았다. 또한 아낙시메네스라는 고대 철학자는 ‘공기’를 만물을 탄생시킨 근본 물질이자 원리(아르케)라고 보았다. 하지만 헤라클레이도스는 그 모든 것은 아르케가 아니며, ‘불’이야말로 진정한 아르케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아르케’, ‘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물과 교환되고, 불은 만물과 교환되는데, 상품이 금과 교환되고 금이 상품과 교환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은 공기가 멸해야 살고 공기는 불이 멸해야 살며, 물은 흙이 멸해야 할고 흙은 물이 멸해야 산다. 『서양 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헤라클레이도스는 불이 곧 ‘아르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헤라클레이도스의 ‘아르케’는 여타 철학자들의 아르케와는 조금 다르다. 그에게 ‘아르케’(불)은 ‘근본원리’이기는 하지만 ‘근본 물질’은 아니다. ‘세상 만물은 모두 흘러서 변한다’고 본 헤라클레이도스에게 불변하는 ‘근본 물질’ 같은 것은 있을 리 없다. 불은 세상이 흘러가는 ‘근본원리’를 보여주는 존재로서의 ‘아르케’일 뿐이다. 그가 보기에 불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변형시킴으로써 끊임없이 세상을 변하게 하는 원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공기→불→재···)
헤라클레이도스의 사상은 동양의 음과 양 개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대립하는 것들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내는 역동이 우주의 추동력이자 영원한 상태라고 믿는 부분이 그렇다. 그는 서로 대립하는 것들은 지배력을 교대할 뿐, 어느 쪽도 완전히 소멸시키거나 파괴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우주적인 긴장 상태는 연속되기에 세계의 갈등과 다툼은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바로 여기서부터 헤라클레이도스의 헛발질이 시작된다. 헤라클레이도스는 참담한 살육이 펼쳐지는 전쟁을 불가피한 것을 넘어 좋은 것이라 여긴다. 그는 전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만물의 제왕으로, 어떤 존재는 신이 되게 하고 어떤 존재는 인간이 되게 하며, 어떤 자는 노예가 되게 하고 어떤 자는 자유민이 되게 한다. 『서양 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후대에 전해지는 작품에 따르면, 헤라클레이도스는 타인을 경멸하는 데 중독된 인물이고, 더 나아가 인류를 경멸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인간을 폭력과 강제력을 동원해야만 선을 위해 행동하게 만들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가축들은 매로 쳐서 목초지로 몰아가야 한다.”) 인간은 정말 그런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물론 인간에게는 폭력과 강제력을 동원해야만 악을 억제하고 선을 행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 특정한 훈육의 결과일 뿐이다.
노예가 노예처럼 사는 이유는 노예로 길러졌기 때문일 뿐이다. 자유인으로 길러진 이들에게는 선을 행하기 위한 폭력과 강제력은 필요치 않는다. 헤라클레이도스의 헛발질은 그가 아르케를 ‘불’로 생각했던 시점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림으로써만 그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던가. 이런 아르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헤라클레이도스는 철학사에서 이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헤라클레이도스 이후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세계의 원천(원리·원인)을 밝히는 ‘아르케의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아르케’적인 철학사적(세계의 중심원리는 무엇인가?) 흐름은 서양 철학사에 2천 년 동안 이어지게 된다. 헤라클레이도스는 일찍이 이런 단일한 중심을 묻는 ‘아르케’적 논리에 틈을 낸다, 불이 아르케일 때, 그 불이 아르케마저 파괴해 버릴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헤라클레이도스의 불은 인간다움마저 파괴해 버리는 역할도 하게 된다. 이런 경향은 후대 철학사에 남겨지게 된다. 헤라클레이도스 이후 서양 철학사에서 등장한 ‘헤겔’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헤겔의 변증법이 무엇인가? 세계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세계정신이며, 이는 개별적이고 단독적인 한 사람보다 더 중요하다는 논의 아닌가. 헤겔의 ‘아르케’(세계정신)는 헤라클레이도스의 ‘아르케’(불)의 변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