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지배자가 있는 한, 더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는 요원하다. 우리에게는 무력한 지배자, 즉 ‘추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추장제’를 실현해 모두가 더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쉬이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추장제’가 더 기쁘게 함께 사는 삶을 담보한다고 하더라도, 권력자가 지배하는 세계 넘어서기 어렵다. 왜 그런가? 우리의 마음 안에 있는 두 가지 문제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착시와 비겁함이다.
착시는 무엇일까? ‘권위자’를 ‘권력자’로 오해하는 착시이다. ‘권위’와 ‘권력’은 모두 힘이지만, 두 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권위’라는 힘은 가변적이며 유동적이지만, ‘권력’은 영속적이며 고정적이다. 이는 당연하다. ‘권위’는 체제를 구성하거나 유지하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지만, ‘권력’은 체제를 구성하거나 유지함으로써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른’과 ‘사장’이 있다. 시골 마을의 ‘어른’은 ‘권위자’이며, 대기업의 사장은 ‘권력자’이다. ‘어른’은 힘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 힘든 일이 있거나 마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른’을 찾는 것은 그래서다. ‘어른’의 지혜와 따뜻함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그 힘은 가변적이며 유동적이다. 만약, 그 ‘어른’이 무지하거나 편협한 혹은 이기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그 ‘어른’을 자연스레 찾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마을 사람들이 그 ‘어른’을 찾아야만 하는 체제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장’은 다르다. 사장의 힘은 체제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영속적이며 고정적이다. 직원들이 ‘사장’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의 곁에 머무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월급을 주는 체제(회사)를 구성하고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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