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말에는 힘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위안과 위로를 줄 수 있는 힘과 기운을 나눠줄 수 있는 힘이 모두 있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매력은 누군가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말과 행동을 하는 데서 온다. 그런 매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힘이 있다.
1)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모습을 붙잡아 말로 표현하는 능력
2) 눈앞에 있는 상대를 존중하고 몰입하는 집중력
3) 애정 어린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는 것"
- 희렌최, <호감의 기술> 중에서
내가 기억하는 말들 역시도 이런 특징들이 있었다. 최근에 강의를 한 고등학교에서도 그런 말을 만났다. 6시간 강의를 하고 나서 한 친구가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강의는 저희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강의인 거 같아요.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이 표현이 6시간 강의의 피로감을 잊을 수 있게 해 줬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씩 지어졌다.
누군가의 말이 칼이 될 때도 있지만, 누군가의 말이 힘이 될 때도 있다. 습관 중 하나가 힘이 된 말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하는 것이다. 말이 힘이 되었던 때를 하나씩 하나씩 모은 메모장을 기운이 없을 때 보면 신기하게도 기운이 난다. 초고속 충전 밧데리 같다. 사람의 지문처럼 내가 힘이 되는 말에도 지문이 있다. 힘이 되는 말의 지문을 보면서 나 스스로가 이해되기도 한다.
타인의 말보다도 중요한 건 어찌 보면 자기 자신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내게 칼이 되는 말을 스스로에게 계속한다면, 독이 되는 말을 지속해서 한다면 우리는 시들어 갈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존중해주지 않고, 애정 어린 눈이 아닌 경멸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때 내면 속 지옥은 시작된다.
타인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게 되면 어떨까. 처음에는 오글거릴 수도 있고, 거절하거나 수용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 애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볼 것, 거울 속에 내 눈을 보며 스스로에게 다정히 말하는 이 사소한 행위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아가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원적인 힘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인스타를 보면서 공감이 갔던 짤이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따봉을 하며 미소 지어주는 것은 스스로에게 다정히 건네는 무언의 행위다. 나는 오늘도 따봉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다정한 말을 외친다. "오늘 역시도 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