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쾌한 답이 없는 이야기. 그것은 사랑
유치원 생활 1개월 차. 첫째 주까지는 긴장을 했는지 돌아오면 피곤한 티가 팍팍 났는데 초반의 긴장이 풀렸는지 이제는 잘 때 빼고 쉼 없이 재잘대는 평소의 아이로 돌아왔다. 동시에 나 또한 적응하게 된 아침 셔틀버스 등원. 최소 8시에는 아이를 깨워야지 간단한 아침을 먹이고 옷을 입고 이를 닦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8시 35분에는 집을 나서야지 버스 정류장에서 셔틀버스를 탑승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등원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아파트 버스 정류장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 공간에는 같은 연령대의 친구들이 총 7명이 있다. 아직은 친구보다는 엄마, 아빠를 찾는 나이대. 셔틀버스가 오기 전까지 아이들은 저마다 엄마, 아빠 품에서 떨어지지 않다가 버스가 도착하면 어떤 아이는 울며 어떤 아이는 탑승하지 않으려 하며 애착 관계의 단절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7명의 무리 중에 같은 반인 친구가 없는 우리 아이는 무덤덤하게 버스에 오르는데 떠나기 전 창문에 대고 '엄마 아빠 사랑해'를 발사하는 친구들 대비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는 시니컬함을 보여주며 유치원으로 향한다. 그래도 울고 불며 버스에 탑승하는 것보다는 마음이 덜 쓰이니 아이의 노관심 퍼포먼스는 감사한 일이기도 하다. (-라고 합리화하지만 사춘기 때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아빠에게 냉정한 아이에게 열정이 생긴 건 2주 전부터다.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한 소녀의 이름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드문드문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하더니 요새는 눈을 뜨면 '그녀가 뭐 하고 있을까? 밥을 먹고 있나? 세수했나? 방귀 뀌었나?' 하면서 폭풍 질문을 한다. 엄마와 그녀 중에 누가 더 좋냐?라는 선택형 질문에 거침없이 그녀를 택하는 아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걸까. 날이 갈수록 그녀에 대한 열정이 고조되는 걸 보니 연애 선배로서 올바른 가르침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원하기 전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빠의 짧은 연설이 시작됐고 '용기를 내어라'라는 핵심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빠도 엄마에게 용기 내서 좋아한다 했고 그래서 결혼을 했어. 우리 아들도 궁금한 일이 있으면 말을 건네봐."
라고 쉽게 말했지만 실상은 용기를 내기까지 굳은 마음을 꽤나 했던 쫄보 아빠. 바보가 바보에게 건네는 훈수가 맞는 건가 싶었지만 아이가 어느새 커서 이런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꽤나 재밌었다.
어라? 잠깐 이거 어디서 봤던 장면인데? 영화 러브액츄얼리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의 사랑을 우습게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상담하고 고민해 준 아빠. 결국 남주 아기는 비행기 출국을 앞둔 여자 아이게게 좋아하는 마음을 전했고 볼뽀뽀로 대답을 받는다. 영화를 보며 훗날 나도 아이가 생기면 영화 속의 아빠처럼 아이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리라 다짐했는데 그날이 덜컥 하고 오게 될 줄은.
비록 오늘 역시 그녀를 만났으나 빤히 바라만 봤던 아들 녀석이었지만 쑥스러움은 아빠의 전유물과도 갖기에 동일한 DNA를 가진 아들을 십분 이해하며 사랑에 빠진 다섯 살의 유치원 생활을 응원하기로 했다. 사랑만큼 어려운 감정도 없으니 말이다. 아빠에게는 냉정하더라도 그녀에게는 열정을 보이는 로맨티시스트가 되길. 여러 가지로 나보다는 나은 아들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