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er Oct 09. 2017

회사 내에서 언어가 막히는 이유들

'회사 언어 번역기'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백약이 무효한 회사가 있습니다. 경영진을 새로 바꾸고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와도 잘 되기는 커녕 오히려 직원들이 그만두고 실적이 점점 안 좋아지는 회사가 있습니다. 새로운 혁신을 꾀하기 보다는 어차피 안되다 보니까 혁신을 입으로만 말하는 중간 관리자도 속으로는 어차피 안될 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회사가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상당 수 기업은 그런 위치에서 한 달을, 일 년을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의 전략을 모방하고 내부 직원들의 처우를 악화시키고 원가를 무리하게 잡는 등 당장의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뿌리를 내다 버리기도 합니다.



왜 이런 병폐는 사람을 바꾸든 새로운 카드를 들고 나오든 바뀌지 않는 걸까요? '회사 언어 번역기'는 소설의 형태로 쓰여져 있기에 단번에 그 원인을 찾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와서 공감하는 것부터가 경영 혁신의 출발이기에 '회사 언어 번역기'도 그렇게 쓰여져 몇 가지 주제가 여러 이야기에 녹아져 있습니다. 물론 스토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책에서 던지는 몇 가지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작가가 쓰는 서평 같은 거죠.




과적합 : 과거의 정리인가, 새로운 모델링인가


과적합(Over-fitting)은 데이터 모델링에서 많이 쓰는 용어입니다. 흔히 말하는 빅데이터 처리 방법 중 고려해야할 오류 중 하나입니다. 과적합은 표본을 너무 자세히 적용해서 표본 외에는 써 먹을 수 없는 알고리즘을 만든 것을 뜻합니다. 표본을 통해 원래 말하고자 하는 전체 데이터의 속성을 알고리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표본에만 딱 맞는 알고리즘이 생기면서 새로운 변화를 반영할 수 없는 오류를 말합니다. 요즘 각광받는 인공지능이 오랜 시간 정체되어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과적합 알고리즘의 오류는 기업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회사에서 돌아가는 철학이나 제도를 기존 것을 설명하고 지키는 데 맞추어 너무 완고하게 되어 있는 경우 변화를 따라가기 어렵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제도를 너무 세분화 시키거나 지금 나타는 것 중 한 쪽으로 편향되어 제도를 만들었거나 경영진에서 임의로 중요한 뭔가를 집어 넣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책에서는 평가 제도 등 기업의 인재에 대한 정의와 관련 제도에서 과적합 오류를 꼬집습니다. 단순히 지금까지의 성공한 결과만을 가지고 미래의 인재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떻게 저 사람이 부장이 되었는지 제도를 만든 사람도 잘 모르지만 단순히 지금 부장이니까 저 사람이 인재라고 생각해서 부장의 속성을 집어 넣어 이런 사람이 인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고, 인재에 대한 철학, 그리고 어김없이 나오는 왜곡된 평가가 바뀌지 않습니다.


비단 인재만에 그치지 않습니다. 수익성을 평가하는 모델링을 한다든지 기업에서 중요한 투자 및 손익 관련 분석을 할 때에도 과거 지향적인 알고리즘으로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델링을 한 게 아니라 정리를 했기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전체를 보고 모델을 만든 게 아니라 한 쪽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경영진의 직관이 알고리즘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아젠더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경영진 및 기획/인사 부서로 나오는 중앙 조직과 단위 사업부로 나오는 조직과의 갈등은 이 책을 끌고가는 주요 내용입니다. 전략의 방향을 정하는 거 부터 회사에 필요한 역량을 무엇부터 확보해야 하는지 충돌이 벌어지기도 하고 나중에는 기업 문화를 누가 만들어야 하는지까지 늘 중앙 부서와 현장에 가까운 조직이 충돌합니다. 회사에서 자주 이런 일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뭔가가 내려오는데 실제 고객을 피부로 만나고 있는 조직이 봤을 때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면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없거나 불만만 많은 사람으로 찍히게 됩니다. 때로는 이런 원인으로 인사 이동이 벌어지기도 하고 평가가 반영되고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조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됩니다. 정작 필요는 모르면서 평가만 하고 있는 귀가 막힌 중앙 조직을 볼 수 있습니다.


개인으로 할 수 없으니 조직이 만들어진 것인데 일은 마치 고객이 아닌 조직을 지키기 위해 하는 것. 아젠더는 누가 만들어내고 이끌어 가야할까요? 국내에서 고전하고 있는 글로벌 브랜드가 하나같이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다만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현장 조직에 아젠더를 맡기고 중앙 조직이 아무런 지원 없이 노는 경우도 주의해야 합니다. 마치 권한을 준 것 처럼 말하지만 예산이나 인재에 대한 권한을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 팔다리 묶어 놓고 일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개입하거나 너무 방치하는 꼴이죠. 책에서는 대표가 끊임 없이 전략기획 팀장에게 휘둘리다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조금씩 보여줍니다.


이미 진행하고 있는 아젠더도 왜 이걸 시작하게 되었는지로 다시 돌아가야 계속 할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다른 데서 잘 했다고 이걸 마냥 우리에게 적용해서도 안됩니다. 아젠더의 표면만 잡고 있는 조직에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상대성은 어떻게 조직을 무너뜨리는가


책에서 해결의 출발점이 되는 것으로 말한 주제입니다. 칡넝쿨처럼 얽혀 있는 조직의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상대성을 말할 것입니다. 상대주의는 조직과 인재에 대한 평가, 목표 수립의 기초가 되는 철학입니다. 조직에 적당한 긴장을 넣고 우수한 인재를 선별하려는 의도가 있지만 어느 단위까지 적용하고 얼마나 차등을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왜 이걸 하고 최종 결과로 남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예전 방식으로 남은 상대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주의는 평가자 입장에서는 편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지 않고 대화하지 않는 조직의 언어가 막히는 출발점이 됩니다. 단순한 것이지만 서로 노하우를 나누지 않습니다. 개인 사업자의 집합처럼 조직이 되어 버립니다. 평가자는 평가자대로 기존의 상대주의의 유산을 신뢰하고 그것이 곧 정치가 됩니다. 한 번 밀려난 사람은 조직에서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직장 내 흙수저와 금수저가 채용 방식에서부터 나눠지는 것도 여기서 기인합니다. '대마불사'가 되는 것입니다.


책의 후반부에 평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변화의 출발을 다루고 있지만 실은 중간에 시시콜콜 업무를 확인하고 참견하는 과정, 평가를 의도에 두고 대화하는 과정, 사람을 누구를 써야 하는 지에 대한 내용에서 모두 상대주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로 잘 보이기 위해 많은 고통을 실무진에게 떠 넘기는 리더의 그림자가 곳곳에 있습니다.




회사 내의 수요와 공급의 왜곡


경제학의 기본 원리인 수요와 공급을 회사 밖에서는 그렇게 잘 이해하면서 회사 안에서는 생각해보지 않는 것에 대해 책은 여러 상황에서 꼬집습니다. 특히 관계사와 일하는 방법을 통해 갈라파고스 효과가 조직에 어떻게 침투하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또 원하는 사람은 없는데 계속 뭔가 만들어서 적용하길 강요하는 중앙 부서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어디보다 경제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기업에서 실은 가장 비 경제적인 방법으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특정 회사, 특정 부서, 특정 인재, 특정 자원만 이용하기 시작하는 이유가 만들어지는 것 부터가 출발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사람은 답습하게 됩니다.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요될 수 없습니다. 만연한 수요와 공급의 왜곡은 나중에 인지하지도 못하게 됩니다. 왜곡된 부분은 시장의 변화에 뒤쳐지게 되고 특정인을 위한 조직이 되어 버리게 됩니다.




'브랜드가 망가지는 9단계'를 쓸 때부터 궁금한 것은 조직이 무너지는 원인이었습니다. 현상을 넘어선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대안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단순히 '이 전략이 안되었다', '역량 확보가 부족했다'로는 대안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구조를 제대로 세우면 사람들이 흔히 갈망하는 동기부여, 학습조직, 피드백 같은 것은 어렵지 않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조직에서 구조에 대해 서로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부디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