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 브랜드 에세이 #1-2] 훌타포스(Hultafors)
2023년 4월 20일, 경기도 포천, 스웨덴 프리미엄 수공구 브랜드 훌타포스(Hultafors)의 쇼룸이 오픈했다. 훌타포스의 공식 수입사인 '노르딕툴즈(Nordic Tools)'는 본사의 건물 A,B동을 각각 훌타포스의 전시관, 역사관으로 꾸며놓았다. 평소에 훌타포스에 관심이 많던 기술자들이나 지역 철물점 대표님, 포천 지역민들이 모여 훌타포스 제품들을 구경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즐겼다
공생의 사무실이 위치한 안양에서 약 110km 정도. 포천까지 가는 거리는 꽤 멀었다. 툭하면 교통 체증이 일어나는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지나고, 한산한 구리-포천고속도로를 거쳐 차가 거의 없는 2차선 국도를 타야 했다. 이런 머나먼 여정이어도 부리나케 간 이유는 단순했다. 이 쇼룸이 열기까지의 고단했던 과정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 쇼룸이 공구 시장에 많은 변화를 이끌어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디월트, 밀워키 등 메이저 전동공구 브랜드들은 위치가 고정된 쇼룸보다는 지역상에 찾아가는 소위 '필드 어택'이 더 효율적이었다. 전동공구 브랜드 컬러가 랩핑된 1톤 트럭이 협의된 지역 철물점에 자리 잡으면 유저들이 와서 공구를 시연해 보고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설사 쇼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도 내가 생각하는 쇼룸의 이미지는 없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제품의 시연, 판매 목적이 대부분이었고 제품의 디자인과 브랜드를 느낄 여유는 많이 부족했었다.
반면 이번에 오픈한 훌타포스의 쇼룸은 기존 공구 쇼룸의 형식들을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탄강을 끼고 살짝 솟아있는 언덕에 있는 이 외지의 쇼룸은 마치 오랜 여정 끝에 보물을 발견하는 그런 상쾌함을 느끼게 해준 공간이었다.
철물점의 특징, 진열 방식은 최대한 '빽빽하게'가 기본이다.
제품 개개별보다는 형형색색 다채롭게 모여있는 모습이 '없는 게 없는 철물점' '멀티숍'의 이미지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무색이나 무채색 계열의 진열대 하에 제품을 차곡차곡 채우면 다채로운 진열이 완성된다. 브랜드들의 칼라 경쟁도 이런 색조합 속에서 눈에 띄기 위함이다.
이런 관점으로 훌타포스 쇼룸은 색다른 시도였다. 최대한 심플하고 제품의 특징이 보인 여백 있는 디스플레이는 고객이 제품의 형태, 색상 등 개별적인 진면목을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앞의 널찍한 사이니지에서 재생되는 훌타포스 브랜드 영상은 우리가 이 제품을 실제 사용해보는 상상을 비춰줌과 동시에 공간의 역동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훌타포스의 쇼룸의 가장 큰 특장점은 이 역사관에 있었다. 제품의 기능만 중시하던 소비자들에게 이 제품과 브랜드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스토리가 담겨있었다. 실제 훌타포스의 직원들의 손편지, 스웨덴에서 직접 공수해온 빈티지 오브젝트들과 목수가 커스터마이징 한 가구들이 시선을 끌었다. 한탄강이 보이는 넓은 풍경 아래 낡은 나무색으로 채워진 이 역사관은 스웨덴의 시골 속 작은 오두막을 구경하러 온 느낌을 만들어냈다.
대부분 공구 쇼케이스, 시연회는 이렇다. 신제품을 소개하고 직접 체험해보고 맘에 들면 매입하는 실용적인 행동에 따른 순서가 있다. 훌타포스 쇼룸 오프닝에서는 고객들이 적극적이면서 재밌게 참여할 여러 이벤트를 열였다. 접자(Folding Rule) 빨리 폈다 접기, 수평 맞추기 게임은 훌타포스 팬뿐만 아닌 일반 고객들에게도 공구에 호기심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또한, 수입사 노르딕툴즈와 훌타포스 스웨덴 본사 팀의 브랜드 프레젠테이션은 고객들에게 한국 진출을 더욱 탄탄히 공식화하고 브랜드의 전문성, 신뢰성이 돋보이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인디 뮤지션의 역사관 내 공연은 쇼룸 오프닝의 끝을 차분하게 마무리지으며 하루 행사의 여운을 남기게 하였다.
브랜드를 알아갈 때면 횡(가로)과 종(세로)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로는 고객들이 즐기기에 충분한 브랜드 제품 라인을, 세로는 고객이 깊게 몰입하는 브랜드의 역사와 철학을 의미하는데 이 두 선이 적절히 균형을 이뤄야 멋진 브랜드 행사라고 생각한다.
훌타포스 쇼룸은 브랜드의 입체감을 아주 잘 나타낸 공간이었다.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들을 넓게 펼쳐주는 전시관, 브랜드의 역사와 이와 맞물린 스웨덴의 문화를 나타내주는 역사관 이 두 동을 돌아보니 훌타포스가 어떤 브랜드였는지, 앞으로 어떨 브랜드일지 알게 되었다. 먼 거리여도 충분히 다녀온 보람이 느껴진 건 오랜만이었다.
노르딕툴즈 팀과 잠깐의 대화를 나눴다. 목수의 커리어 토크, 팬 커뮤니티 미팅 등 앞으로 이 공간을 적극 활용하는 여러 특별 행사들을 기획한다고 들었다. 아직 스케치만 된 행사들이었으나 듣기만 해도 공구 시장의 변화된 미래를 잠시 들여다본 것 같았다.
예전 직장에서 공간 매니저를 했을 때 매일 들었던 말이 있다.
“공간은 장기적으로 봐야 한다 “
오픈은 누구보다 화려했으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공간을 너무 많이 봤다. 처음엔 공간, 운영 조직, 소비자 모두 새롭기 다가오기에 무언가를 해도 진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훌타포스 쇼룸 오프닝은 방문객이 모두 좋아한 행사였다고 본다. 이렇게 첫 발걸음을 당차게 했으니 다음 걸음도 앞으로의 긴 러닝도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갔으면 좋겠다.
아니 나아가게 만들어야겠다. (공생도 대리점이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K44ztHMRF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