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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May 17. 2024

아이스크림 주세요!

-<종이 놀이터> 2화.



내가 바라보는 것이 내가 된다


젊은 시절, 나딘 스테어의 시 '인생을 다시 산다면'을 접했을 때, 온전히 공감이 가지 않았다.

책을 더 많이 읽고, 더 철저히 준비를 하고, 몸도 따뜻하게 해야 건강하고, 꽃도 꺾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모든 일에 분별력 있게, 건전하게 행동하고, 단 하루도 허투루 쓰는 법 없이 성실히 사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아이스크림은 적게 먹고 콩 요리를 더 많이 먹어야 좋은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때보다 나이를 먹고, 그때보다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른 지금에 와서 보니 이 시의 더 많은 문장에 공감이 간다.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잃어버린 것, 되찾고 싶은 것을 바라본다라고 할 때, 나딘 스테어 시인님은 완벽주의처럼 무척 정돈되고 열심히 살아오신 자신의 삶의 토양에서 이런 아름다운 욕망의 시를 꽃피워내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내 인생과는 질감이 많이 다른 느낌이다. 


내 경우는 투머치 오늘만 생각하며 살았고, 상상 속의 고통을 피했고, 춤을 너무 많이 췄고, 너무 오래 맨발로 지냈고, 건전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바보같이 살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 시가 너무 좋지만 이 시대로 살아서는 큰일 난다. 좀 더 단단해지고, 정갈해지고, 정확한 것을 바라봐야만 한다. 더 이상 바보같이 살 수는 없다. 나는 똑똑해지고 십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더 많이 먹고십따아~~~




젤라또는 진짜 사랑이었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유럽 배낭 여행을 갔다. 정해진 예산과 일정이 빠듯해서 특별한 이유 없이 여유를 부리는 계획은 피했는데, 단 하루 로마에 하루 더 머물기로 급히 계획을 변경한 일이 있었다. 급변경의 사유는 바로 트레비 분수 앞 젤라또 가게의 너무 맛있는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다. 다음 날 다시 와서 다른 맛의 젤라또를 한번 더 먹겠다는 야망으로 하루를 더 있기로 했다. (내가 다른 모든 음식에 있어서 그렇게 집착하는 사람은 아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트레비 분수에 발을 담그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 자유로운 선율이 울려 퍼지는 버스킹 연주, 우리나라에서는 차마 보기 힘든 공공 장소에서 키스를 나누는 사람들을 넋을 놓고 구경했다. 

로마에 이틀을 머무는 동안 틀림없이 그곳에서 제일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 투어를 했겠지만, 미술 작품들에 대한 기억보다 더 또렷하게 남은 장면은, 너무 더운 날씨에 어느 골목에 들어가서 입고 있던 무릎까지 오는 청바지를 짧게 잘라서 핫팬츠로 만든 것, 그래서 미술관에 들어갈 때 바지가 짧다는 이유로 걸려서 스카프로 둘러서 스커트를 만들어 입고는 입장했던 일과 젤라또에 대한 기억이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오고, 두 번 던지면 사랑에 빠지며,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속설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즐거워하면서 동전을 던졌다. 나는 그때 아이스크림 에만 너무 심취한 나머지 동전을 몇 번 던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한 번만 던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로마에 가보지 못했다. 다시 로마에 간다면 반드시 넉넉하게 시간을 잡으리라. 젤라또를 먹기 위해.




인생을 다시 산다면


좀 더 편안하게, 

여유를 갖고 살아가리라.

바보같이 살아가리라.

지금처럼 매사에 심각해지지 않으리라.

더 많은 것에 도전하면서 

재미있게 살아가리라.

등산도 수영도 자주 하리라. 

콩 요리보다는 

아이스크림을 더 자주 먹으리라. 

상상 속의 고통은 피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리라.



모든 일에 분별력 있게, 

건전하게 행동했던 나.

단 하루도 허투루 쓰는 법 없이 성실히 살아온 나.

그러나 인생을 다시 산다면 

그저 원하는 대로 즐기며 살아가리라.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순간순간을 살아가리라.

몇 년씩 앞서 걱정하기보다 

오늘만 생각하며 살아가리라.



여행을 갈 때면 

늘 체온계와 따뜻한 물, 우비, 비옷 등을 

챙겨 집을 나서던 나. 

하지만 인생을 다시 산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저 가방 하나 짊어지고 

가볍게 떠나리라.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른 봄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이 올 때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춤도 더 많이 추고, 

회전목마도 더 자주 타고, 

데이지 꽃도 더 많이 꺾으리라.      


나딘스테어 -인생을 다시 산다면




아이스크림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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