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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 Jul 08. 2024

천사와 함께한 시간

-<사랑의 학교>10화.파울클레의 천사 그림으로 본 겸손과 교만의 인간상





지속적인 악성 민원으로 교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줄지어 일어난 여름을 보내며, 유치원 교사로 일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고된 일이었지만 아무리 힘든 아이라도 아이들은 아름답게만 기억되는 반면 부모님들을 응대하는 일의 힘들었던 경험은 벌써 십여 년이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질문으로 남아 이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노동에 따르는 극복해야 할 건강한 형태의 어려움을 넘어서 무기력으로 이끄는 고통과 우울의 병적인 상태에 이른, 현재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육 문제의 믿기 힘든 혼돈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상대의 의견을 들으려는 소통의 기능을 상실했다. 소통의 자리는 공격과 방어가 점유하여 교실과 법정이 혼재되고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에 대한 극도의 존경이 무색한 혐오와 우울이 만연한 시대의 부끄러운 민낯을 마주하며, 정념과 습성을 걷어낸 순수한 정신적 존재인 천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우리 내면에 여전히 존재하는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상에 대한 시선을 높이 확장하고 깊이 기억해 내었으면 한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교사 교육을 받았다. 교육과 연대를 통해 교실에서의 어려움을 나누고 정화하여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일은 순간을 사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 과정이었다. 교사 교육 과목 중에 ‘천사론’이 있었다. 천사에 대해서 공부하는 목적에 대해 이상적인 교사의 상을 천사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다가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 기꺼이 도움을 주는 교사의 모습이 천사가 일하는 방식과 닮아있다는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 천사에 대한 나의 인식은 동화나 신화, 문학과 예술, 신학에 등장하는 상상계의 상징의 존재로 여겼으나 당시의 ‘천사론’ 수업은 공중에 떠 있는 천사의 존재를 땅 위에서 느끼게 하여 실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의 수호천사가 있고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더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를 돕고자 하는 천사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고 응답받기를 원하라.



당시의 절박했던 어려움들이 있었기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실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낮에 의식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기쁘게,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노력하고, 잠들기 전에 천사에게 나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을 하고 잠들며, 잠에서 깨어날 때 천사의 ‘답’을 들으려고 하는 구체적인 마음과 행동의 실천이었다. 



천사의 답이 바로바로 오지 않아도 신뢰하면서 지속적으로 하라.
천사도 질문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천사의 응답이었는지 우연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생각과 명랑함이 샘물처럼 솟아났던 경험들을 여러 번 할 수 있었다. 

사례를 발표했을 때, 진지하게 받아들인 동료들도 있었지만 무슨 종교 단체의 간증인 듯이 어이없어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든 현장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시도이고 노력이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교육과 체험을 통해서 접한 천사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마음은 천사를 학문적 깊이로 연구한 책들로 인도되었다. 

이나가키 료스케 『천사론』

미셸 셰르『천사들의 전설-현대의 신화』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천사의 활동』

루돌프 슈타이너 『천사는 우리의 아스트랄체 속에서 무엇을 하는가?』


이 책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에 대해 놀랍도록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묘사를 하고 있었다. 

신도 인간도 아닌 그들 사이의 매개자인 천사에 대한 앎은 동물도 천사도 아니지만 동물과 천사의 부분을 취하고 있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 그 이상과 균형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왜 천사를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미셸 셰르는 '우리의 세계가 메시지 전달 체계를 중심으로 조직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소통 단절 시대를 극복하는 관계의 철학을 설파한다.


이나가키 료스케는 ‘천사들과의 깊은 사귐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정신과학에 대해 호기심을 지니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되고, 진지한 태도로 임할 때, 생활의 내용으로, 삶을 위한 힘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천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땅에서 발이 떨어지는 공허함이 아니라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이고 시선은 멀리 확장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일상다반사에 올바른 생각과 행위를 선택하고 결정하는데 필요한 연장이며, 혼돈의 일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실제적이고 유용한 도구다.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는 동안, 관찰된 내면의 심층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정리되었다. 

아이들이 내가 공부와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확인된 좋은 의미의 말과 행동을 할 때에는 마음이 편안하다가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거나 느낌이 좋지 않을 때에는 금방 어떤 문제를 찾으려 하거나 걱정을 하는, 중심이 참 잘도 흔들리는 마음이 관찰되곤 했다. 적절한 처방으로 아이의 어려움이 개선되지 않으면 부모를 문제의 대상으로 여기기도 했다.



특별히 어려운 부모님들에게서도 이러한 모습이 보였다. 자녀에 대한 과도한 걱정과 불안이 의심의 악순환을 낳았고, 마찬가지로 아이가 나아지지 않으면 교사의 문제로 전환되곤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보이지 않는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 더 혼란해졌고 그런 아이들은 자신들의 환경인 어른들의 내적 갈등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 같았고, 그럴 때 어른들의 불안이 전염되어 ‘문제’가 일어났다. ‘문제’를 일으키는 주체는 아이로 보이지만 공동체로서의 감정의 전체적인 메커니즘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문제’가 아이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어른들이 과연 나를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분명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다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의 열매를 가득 품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이 되어야 할 부모와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는 단단한 영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너져 내리는 세계 속에서 흔들림 없는 단단한 영혼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나 그나마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해 볼 수 있는 작은 시도들이 여전히 섬광처럼 반짝인다는 것이고, 그 하나의 방편으로 내 생각을 고정시키고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으로서의 그림 하나를 간직하는 일이었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라는 글을 통해서 파울 클레가 그린 천사 그림,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1920》를 ‘역사의 천사’라고 명명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는 사유의 거울로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그린 낙서 같은 한 장의 천사 그림을 두고두고 끊임없이 응시하면서 자신이 처해있는 역사적 상황을 생각하고, 파편화되어있는 생각의 조각들을 형상화하여 자신의 사유를 정리해 나갔던 것이다. 

벤야민에게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 역사의 천사가 있었다면 나에게 나 자신을 투영할 사유의 거울로 파울 클레의 또 다른 천사화가 말을 건넸다. 



어린아이가 연필로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 것 같이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천사의 모습에 매료되었고, 매 순간 불안하게 왔다 갔다 하는 나약한 마음이 클레의 천사화 두 점에 각각 투영되었다. 

하나는 《건망증이 심한 천사(Vergesslicher Engel),1939》, 다른 하나는 《의심하는 천사(Angelus Dubiosus),1940》다. 



작품 제목에 들어가는 단어, ‘건망증’은 기억해야 할 어떤 사실을 일시적으로 잊어버리는 기억장애의 한 증상이다. 완전무결함이 아닌, 틀릴 수 있는, 완벽하지 않음에 대한 표현이다. 건망증이 심한 천사는 두 눈을 감은 듯이 시선은 아래로 향한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듯이 두 손을 모으고 미소 짓고 있다. 



‘의심’하는 천사는 날개를 마치 방패처럼 자신의 몸을 가리고 두 눈은 부릅뜬 채 타자를 주시하고 있다. 공격적인 태세다. 자신은 방어하면서 상대를 샅샅이 보려고 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자신을 의심하고, 모르는 무지함이 역설적으로 보인다.



클레의 천사에는 인간적인 약점과 불완전한 존재가 알고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타자를 대함에 있어서 어떠한 태도를 갖추어야 할지에 대한 상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인지학의 창시자로 정신과학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루돌프 슈타이너는 ‘진정한 인식을 추구한다면 자만하거나 교만스러워질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교사는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부모도 교사를 잘 모른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라는 묘목을 중심에 두고 어떤 꽃을 피워내고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를 가능성의 나무를 잘 키워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나무를 키워낼 햇살과 바람과 비가 되어야 할 존재들이다. 시의적절하게 끊임없이 섬세하게 변주되어야 할 환경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서, 《건망증이 심한 천사》를 통해 겸손을, 《의심하는 천사》를 통해 교만을 본다.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처럼, 타자를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나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인식, 올바른 앎을 추구하는 것으로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나를 올바르게 알아가려는 노력 속에 겸손한 삶을 사는 것,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 흔들리는 터전 속에서 클레의 천사 그림을 눈이 시리도록 응시한다.




클레의 천사들


새로운 천사 (Angelus Novus),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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