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걷자, 우리
*마흔 일곱번째 글이 너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사실 최근 직장을 옮기는 나름 큰(?) 신변의 변화가 있어 이래저래 자리잡느라 브런치에 손을 대지 못했네요. 신문사에서 펜으로 보도하던 제가 목소리와 함께 영상으로 전달하는 방송사로 최근 자리를 옮기게 됐습니다.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서..독자님들이 남겨주신 댓글도 이제서야 확인할 여유가 생겼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와 내가 함께 한 긴 연애에 종지부를 찍고 부부라는 새로운 시작을 할.
당시를 회상해보면, 혼수며 드레스며 이것저것 분주하게 준비하는 몇개월간은 크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하다보면 결혼이라는 것이 성립되는 건가'라는 다소 생소한 우리의 모습에 의문을 던질 뿐.
나의 경우에는 결혼식을 일주일 앞둔 그 날부터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 했다. 결혼이란 어떤 정의를 지니고 있는지, 그 느낌은 무엇인지, 우리가 함께 한 긴 시간과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지. 답을 알 턱이 없는 여러 의문점들이 일주일 전부터 나를 괴롭혔다.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걱정과 설렘, 두려움과 기대감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그런 일주일이었다.
결혼식 하루 전날은 그 의문점들이 최고조에 달했다. 새벽 3시쯤 간신히 잠에 들어 식장에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결혼식 당일. 며칠간 나를 괴롭혔던 복합적인 감정들은, 온데간데 없다. 아니, 무언가를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머리를 하고 메이크업을 하고, 식장을 찾아주신 손님들과 인사를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매일 옆에 꼭 붙어 이야기를 나누던 그도 내 옆에 없다. 식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서로 바빴다. 남과 여 한쌍이 서로 하나가 되어 평생을 약속하는 정말 중요한 순간인데도 우리는 서로 대화조차 나눌 시간이 없었다. 모든 신랑 신부들이 그렇듯.
꿈꿔왔던 아름다운 결혼식이 아닌, 정신없는 현실 속의 우리였지만, 어쨋든 우린 많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손을 잡고 걸었다.
함께 걷는 그 길은 짧았다. 서로 바라보지 못한 채, 앞을 내다 보며, 천천히 조금씩 걸었다. 속도는 이게 맞는지, 처음 신은 웨딩슈즈는 왜 이렇게 내 발을 아프게 하는지.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과 전혀 관계없는 쓸데 없는 것들이 머릿 속에 꽉 차, 흔히들 눈물을 쏟는다는 부모님과의 마지막 아이컨텍에도 난 울지 않았다.
수개월간 준비한 결혼식이 30여분만에 마무리를 지을 때쯤, 예고에 없었던 축가가 추가로 진행됐다. 프로포즈를 나에게 받았던 그가(여자가 하는 프로포즈편 참고) 식장에서 나 몰래 준비한 선물이었다.
하루 종일 이 큰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우리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의 친구가 축하의 노래를 불러줬고, 그는 '평생 사랑할게'라는 다소 닭살스런 피켓을 들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로 만들어줬다.
예상하지 못 했던 이벤트였기에, 놀람과 고마움의 감정은 물론, '아, 날 사랑해주는 남자와 내가 함께 살아가게 되는구나'라는 결혼에 대한 정의가 머릿 속을 스쳤다.
내가 일주일 동안 모아뒀던 감정주머니 한 곳이 뚫리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다고 내가 느낀 그 감정들이 결혼에 대한 답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오랜 시간 바쁘게 준비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만든 오늘은, 우리가 앞으로 함께 할 수많은 날들을 위한 밑거름이 아니었을까.
남들과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결혼식에서,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식장 밖을 나갔다.
끝이 아냐. 같이 걷자, 우리.
함께 걸어온 10년이란 기간보다 더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