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한영교 Feb 02. 2021

서인에게

#0 아빠는 페미니스트 

*폴 고갱Paul Gauguin,  <바다의 드라마: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듦Dramas of the Sea: A Descent into the Maelstrom>  ,1889*



1

15년을 함께 단칸방에서 살았던 녀석. 

전학가던 곳 마다 센놈들 먼저 골라 때려 눕히던 골목대장. 

힘으로 붙을 때면 매번 헤드락에 걸려 바닥에 뭉개져 침을 질질 흘리게 만들었던 그 자식. 

친구들이라고는 지나친 근육뭉치 사내들 뿐인 한때 축구선수였던 

동생 서인이가 아빠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2

축하해, 라고 말하고 

어쩌나, 하고 생각했다. 



3

어떤 말이 더 생각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를 빼고는 그 어떤 책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서인이었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책/그림 따위에 질색하고, 

조금이라도 어려운 말에 "아는 하지 마." 라며 쏘아 붙이던 서인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서인이를 향한 말을 포기했다. 



4

그런 서인이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적당한 형식을 갖춘 "축하해" 정도가 가장 적절한 말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서인이의 시간을 최대한 존중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드려다 보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 주고받는 안부전화가 전부인 나의 예전-동생이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 없는 경상도 사내 서인이에게, 아빠가 된 서인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20년만에 생겼다. 



5

들을수 다면 부디 들어주기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