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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영교 Feb 02. 2021

#1 언어생물도감

Aloys l -Zötl, <회충Würmer>, 1868


<ㅇ> 

-1일 차  



1

밤. 진짜 밤. 밤만 남아버린 밤. 온몸에 어둠이 까맣게 드는 밤. 

너무 어두워서 별빛이라도 모아야 하는 밤에 


2

아가를 안고 병원 창 밖을 본다. 

이슬람 사원, 병원 회복실 창 밖 가장 먼 곳에서 그것이 있다. 

서울 한 복판에 이슬람 사원이라니. 

속싸개에 쌓인 아가를 안고 보내는 첫 번째 밤만큼이나 창밖의 무슬림 사원은 낯설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채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애인도 낯설다. 


3

“낯선 밤엔 노래를 부르는 거야.” 

아버지와 함께 올랐던 지리산 장터목 산장에서 보냈던 밤. 

심하게 까만 어둠이 뱀처럼 발끝을 휘감고 목덜미로 오르는 밤. 

그 밤에 아버지가 불러주었던 노래, 무슨 노래인지 기억도 안나는 노래. 

어떤 노래가 떠올랐다. 

어둠을 어르고 달래던 그 노랫소리에 따라 잠에 들었던 낯선 밤의 노래. 


내가 아는 순한 노래들을 낮게 허밍 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들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조금씩 노래는 낯선 어둠을 조용히 눕혔다. 

품에 잠든 아이를 그 옆으로 눕혔다. 

밤도, 아가도, 애인도, 병원도, 이슬람 사원도 모든 것이 낯선 이 밤을 달래는 건 음악뿐이었다. 


4

아가는 노래 속에 잠에 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면서 아직 말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소리를 빨았다가 뱉었다가 오물거렸다가. 

어떤 소리를 냈다.

으, 같기도 하고 아, 같기도 하고, 이, 같기도 했지만 국어의 문법으로는 도저히 그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어떤 소리. 

이 소리를 어떻게 받아 적어야 하나.  


5

메모장을 꺼내 ‘ㅇ’을 받아 적었다. 

나의 언어로는 받아 낼 수 없는 그 옹알거리는 ‘ㅇ’를 적어놓고. 그 날부터 아가의 말을 받아내는 기록을 시작했다. 

아이의 입에서 발음될 그 첫 번째 말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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