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묭 Oct 03. 2023

긴 잠옷을 꺼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깜짝 놀랐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공기를 느끼면서 가을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쌀쌀함을 넘어서 춥게 느껴진다. 집에서는 조금이라도 땀이 나는 게 싫어서 늘 제일 얇고 헐렁한 옷을 입고 생활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긴팔 긴 바지를 꺼냈다. 수면잠옷을 꺼내는 건 오바같아서 면으로 된 소재로 갈아입었다. 날씨는 서서히 가을이 온다고 알려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찬바람을 내 소매 안으로 훅-하고 욱여넣는 느낌이다. 배신의 감각을 느끼며 긴팔 옷에 고개를 집어넣다가 '아, 지금 10월이지'하고 문득 깨달았다. 아직 정신은 9월에 머물러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알아채지 못하게 10월이 왔다.


옷장도 바꿀 시기가 됐다. 두툼한 니트나 후드티가 등장할 시기는 아니지만 얇은 긴팔과 가벼운 외투들이 등장할 차례다. 내가 물건 정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날씨에 맞춰 옷을 입는 부분에 예민한 것 같다. 밖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더위나 추위를 느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춥고 더운 감각에 신경이 쏠리고, 집에 가고 싶어진다. 카페 같은 실내 공간으로 도피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날 카페에 갈 예정이 아니었다면 괜히 에너지를 소모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옷장을 자주 살피고 정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찬물을 안 좋아해서 한여름 빼고는 상온의 정수기 물을 마시는데, 방금 막 떠온 물이 살짝 차게 느껴진다. 따뜻한 물을 보충해서 마셔야겠다.


아토피 피부에는 날이 추워진 게 반가운 일이다. 피부에 열이 오르면 안 좋기 때문에 늘 약간 서늘하게 지내려고 한다. 덥지 않아도 잘 때는 항상 선풍기를 옆에 두고 초미세풍으로 틀어두고 잔다. 자는 동안 조금이라고 긁지 않기 위함이다. 어제는 선풍기 없이 이불을 덮고 잤다. 이제 밤에 샤워를 하고 나오면 '읏추추'하고 몸을 웅크리게 된다. 방으로 들어와 잠옷을 찾는 손도 다급해졌다.


몇 달 뒤 눈이 오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광양은 따뜻한 동네라 눈이 오더라도 쌓이는 경우가 드물지만 눈이 오기는 온다. 여행을 가장 많이 다녔던 계절이 겨울이라, 왠지 올해 겨울도 어딘가로 가야 할 것만 같다. 어디서 보내든 가장 조용한 겨울을 보낼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회가 없을 땐 기회를 만들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