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달라진 것들
10시 15분. 그래, 5분이면 할 수 있어. 타지방으로 출장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 전화로 딸아이 준비물을 챙기고, 주말에 셋째 임신 소식에 힘들어하던 친구에게 위로차 전화를 걸고, 전업주부였다가 다시 워킹맘이 되면서 무엇보다 중요해진 우리딸들의 할머니, 친정엄마 스케줄을 확인하고 나니 벌써 내릴 때가 됐다. 그런데 기차 시간이 5분 밖에 남지 않았다. 5분 안에 과연 저 플랫폼을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타는 곳으로 가서, 열차를 확인하고 세이브! 할 수 있을까. 일단 뛰어보자.
일단 뛰어내려서 나가는 곳 확인, 달린다. 그리고 계단으로 직진 . 계단에서도 당연히 달려야지. 뭐 이쯤이야. 비록 2년을 쉬고, 신은지 한달밖에 안된 나의 8센치짜리 구두이지만 이정도 뛰는 거야. 5분이면, 충분해. 딱딱 거리는 구두 소리를 들으며 속도를 높이기 시작... 하고 싶었다. 당연히 가능할 줄 알았다. 이제 겨우 한 블럭 올라왔을 뿐인데..
급격하게 다리에 힘이 안들어간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하지? 마음은 이미 날아다니는데 몸은 전혀 속도가 안붙는다. 대신 따라오는 건 헉헉대는 숨소리와 힘이 안들어가는만큼 지쳐버린 장딴지와 종아리의 아우성. "더이상 못 달린다고! 너는 더 이상 날밤새고 다음날 프리젠테이션 현장으로 뛰어가던 그 쌩쌩했던 아가씨가 아니거든!"
누가 거꾸로가는 에스컬레이터라도 태운 것 마냥, 몸 따로 마음따로 겨우 기차역 안으로 도착하니 10시 19분. 늦었다. 여기에서 1분 동안 타는 곳을 찾고, 플랫폼을 확인하고 다시 뛰어내려가기까지. 내 다리는 불가능이라고 온 다리로(?) 외치고 있다. 서둘러 결제했던 온라인 티켓을 반환하고(수수료...안녕....) 택시타고 지하철역까지 가면 될 것을 몇 천원 아끼겠다고 꽤 돌아가는 마을버스를 탔던 내 자신을 한없이 탓하며 다음 기차표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 예전에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일. 당연했지만 지금은 어려워진, 혹은 그 반대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한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
첫째, 너무나 당연하게도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첫째를 낳고 곧바로 연년생으로 둘째를 낳은지 1년이 지났다. 두 번의 출산,육아 기간 동안 나는 두 번의 졸도(갑자기 쓰러져버렸다.)와 이석증으로 보이는 심각한 현기증 증상을 느꼈었는데, 처음 쓰러지고 나서 일어났을 때 어찌나 황당했던지. "아니, 내가 왜? 애 좀 낳아 키우는 게 힘들긴 하지.. 그래도 내가 이 정도에 쓰러질 체력은 아니잖아? 그런데 왜 쓰러지기까지?"
수년 전이긴 하지만 날도 꽤 새면서 일했었고 부모님이 주신 건강, 체력만큼은 자신있었던 나였는데. 그냥 그렇게 맥없이 쓰러져버리다니. 출산과 육아의 무게를 마음보다 몸에서 먼저 알아채고 경고를 준 셈이다. 그 체력 그대로 운동 한 번 제대로 안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했으니 어쩌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두번째, 출산육아후 직업전선으로 복귀하면서 이전 직장생활과 달라진 점은 뭐랄까... 음... 좋게 말하면 숫자 에 좀 더 예민해졌다, 나쁘게 말하면 구질구질..(아.. 인정하기 싫다.)해졌다. 기차역에 늦게 도착한 것도 사실은 앞서 말한대로 택시비 몇 푼을 아끼기 위해 약간 고민하다가 우리의 고마운 카카오택시 아저씨콜을 취소하고 마을버스를 선택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닌가. 결국은 택시비만큼 수수료가 나가버렸으니 이번에는 완전 실패한 작전이지만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아마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그 택시비면 우리 딸 좋아하는 치즈라도 더 사주고, 모았다가 장난감이라도 더 사줄 수 있는데.. 화장품 쓰는 것부터도 다르다. 예전에는 주로 백화점 가서 만나는 '에스-, 클리-, 맥(엇, 이건 한 글자네)' 뭐 이런 거 쓰다가 지금은 시장보러 00마트 찾아가면 살 수 있는 '페이스0, 캐시0, 스킨00(먹지 마세요,피부에 양보하세요)'가 주종목이 되었으니. 계산기를 굴리다 보면 예전보다 지갑 열리는 일이 확실히 인색해졌다. 아- 슬퍼해야하나 좋아해야하나.(남편은 확실히 좋아한다.)
세번째 달라진 건, 편해졌다. 물론 똑같이 어렵고, 부딪치고, 때로는 마음 상하게 되는 직장생활이지만 누구 한 마디에 하루종일 신경쓰지도, 또 나의 작은 말실수에 내내 후회하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무엇보다 더 중요한 필드, 가정이 있고 그 다음 필드라고 할 수 있는 회사, 이 두 곳에서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소진되기 때문에(아, 생각해보니 이건 편해진게 아니라 피곤해진건가?>,<) 누군가의 혹은 나의 작은 일들을 신경쓸 겨를이 없다. 또한 아줌마라는 포지션은 전에 겪어보지 못한 아주 편리한 위치라서 나이 어린 남자 사원들에게 장난으로 말을 걸면서 관계를 풀어가기 좋고, 선배들에게도 육아, 가정사 얘기로 화제를 꺼내면 왠만한 경우에는 대화가 풀린다.
쉽지는 않다. 체력은 떨어졌지만 부담없이 야근하는 아저씨 고참들이나 젊은 신입들한테 밀리고 싶지 않고, 가정사나 육아 때문에 사내 관계에서나 일에서도 핑계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고, 아내의 남편이며, 엄마의 (이기적인)딸이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의 분량을 조금씩 쪼개어서 다시 모아 많은 시간을 직장에 할애하는 지금,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니까 모든 것이 다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하면 거짓말일거다.
생각해보면 완벽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결혼 전 솔로일 때도, 연애시절에도, 결혼 후에도, 전업 주부가 되고나서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내가 항상 선택하고 있고 노력하고 있다는 거. 가능해지고 불가능해진 것들의 변화와 줄다리기 속에서 누구에게 핑계대거나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삶.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내 딸들에게, 선택의 기로에 처할때마다 꼭 가르쳐주고 싶다. 답이 아니라, 방향. 속도가 아니라 태도를 의식하며 사는 삶. 그렇게 살기 위해, 살고 싶어서 나는 또 나의 방식으로 마음을 다잡고 회사로 나간다. 나는, 달라져도 또 같아도 그냥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