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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영 Nov 17. 2021

디자이너는 바보가 아닙니다 (2)

디자이너의 성공 방정식

내가 디자이너로 근무할 때 주위 동료들로부터 자조 섞인 말을 자주 들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고등학생 때로 돌아가 미술 학원에 상담받는 자신을 말릴 것이라고. 실제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직업을 바꾸기도 한다.


나 또한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직무 전환을 했다. 5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한계를 느낀 것 같다. 낮은 처우, 사회에서의 인식, 이른 은퇴. 무엇보다 디자인 시장은 점점 대체 가능한 영역이 되어가는 중이다. 디자인은 정답이 없기에 늘 어렵고 나날이 발전하는 템플릿을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디자인 업계의 전망이 어둡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숫자가 줄어들 것이며 소수의 실력자만이 살아남아 업계를 선도할 것이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이 말이다.






성공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면


1. 대체 불가능한 디자인을 해라

출처: https://doctorjoy.net/dieter-rams/

좋은 디자이너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대체 불가능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디자인 실력을 갖어라.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감각의 영역이므로 디자인을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굿 디자인은 단 번에 태가 난다. (디터 람스가 정의한 굿 디자인 10 계명은 언제 보아도 명문이다)


포스터, 앨범, 브랜딩 등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어느 템플릿이나 레퍼런스 사이트에서도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템플릿 파일에 올려진 디자인 소스를 그대로 복사∙붙여 넣기 하거나, 잘 된 레퍼런스 이미지를 흉내 내는 식이면 곤란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의 작업물에 높은 점수를 주는 클라이언트는 없다.


그래픽 디자인은 긴 서사를 하나의 이미지로 함축하여 표현하는 시각 작업이다. 그러므로 작업이 내포하는 서사가 무엇인지, 그중 핵심 메시지가 무엇이고,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에 대한 충분한 고내가 필요하다. 그래픽 디자인 계통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괴물들이 많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아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UX∙UI 디자인은 템플릿으로 인해 대체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다. 컬러 차트, 아이콘, 인터랙션 등 UI 디자인의 상당 부분이 이미 템플릿화 됐으며 현업에서 활발히 사용 중이다. 구글은 머터리얼 디자인(Material Design), 애플은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Human Interface Guidlines)을 통해 자신의 OS에 최적화된 디자인 시스템을 제시 중이다. 스마트폰 탄생 이래 시장에 등장한 수많은 앱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규칙이 존재하기고 한다.


그러므로 자칫하면 UX∙UI 디자인은 창조보다 단순 배치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항상 제품과 사용자를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기능까지 쉽게 도달하도록 안내하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사용자 이미지를 강조한 틴더와 가치관을 강조한 튤립

예를 들어 데이팅 앱 중 틴더(Tinder)는 좌우 스와이핑으로 승낙 또는 거절을 하는 쉬운 인터랙션을 사용, 틴더만의 오락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튤립(Tulip)은 신중한 만남을 컨셉으로 하므로 가입 단계에서 수십 개의 문항에 답하도록 구성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표, PM, 기획자보다 디자인 측면에서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역으로 그들의 기획안에 인풋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 되어야 한다.



2. 생각을 해라

"디자이너는 그냥 색칠해주는 사람이에요." 내가 기획자가 된 이후 들은 가장 충격적인 말이다. 기획자가 기획 문서에 버튼의 위치나 문구 등 사소한 것까지 확정된 상태로 UX∙UI 디자이너에게 주면, 디자이너는 서비스의 디자인 시스템에 맞게 적용하는 역할만 한다는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디자이너 역시 그 역할만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


디자이너를 생각하지 않는 바보로 만드는 게 바로 그런 태도다. 자신을 위해서도, 디자인 업계를 위해서도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UX∙UI 디자이너라면 생각은 필수다.


논리적인 디자인을 해라.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 경험을 분석하고, 유저 저니(User Journey)를 그리자. 단순히 예뻐서, 예전부터 그래 왔으니까, 경쟁사가 그렇게 하니까 따라서 하는 디자인은 금지다. 반드시 맡은 제품과 사용자에 대하여 디자인 관점에서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예시로 핀테크 서비스에서 일할 당시 어느 디자이너 분은 굉장히 높은 도메인 지식과 방대한 리서치 결과물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신규 서비스를 기획할 때 PO보다도 먼저 기획과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재 IT 업계에선 디자이너와 기획자의 경계가 모호하며, 단순히 기획자의 구상에 색칠하는 수준으로는 결코 롱런할 수 없다.


그래픽의 감각적인 디자인이라도 생각은 필수다. 창의성(Creative)은 몰입한 자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다. 어느 주제에 대해 1차원적으로 생각나는 이미지를 다루지 말자. 새로운 방식, 새로운 표현을 위해 고민할 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와우 모먼트를 선사할 수 있다.




디자이너의 2가지 성공 커리어

자, 우리는 1편에서 디자인의 처참한 현실을 다뤘다. 그러나 실상 디자인은 매우 스펙트럼이 넓은 세계다. 개당 몇만 원의 전단지 아르바이트에서부터 수억 대의 도시 브랜드 프로젝트까지. 분야에서부터 작업의 스케일, 동료의 실력, 연봉, 근무 환경까지 천차만별이다. 그중 어디에 속할지는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다.


디자이너의 성공 커리어는 딱 2가지로 정리 가능하다. 당신이 디자이너라면 지금부터 미리 방향을 잡아두자.



(1) 디자인팀 리더

구글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출처/CCBB)
애플 수석 디자이너, 조나단 아이브

성공 커리어 첫 번째는 특정 기업의 디자인팀 리더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회사원 중에 최고 짱을 먹는다. 거시적 시점에서 회사의 디자인 전략을 수립하고, 트렌드를 반영하며, 디자이너의 실제 작업물을 컨펌한다. 시니어의 위치이므로 실무보다 매니지먼트를 하는 자리다.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가 좋을 경우, 그 명맥이 이어져 덩달아 개인의 브랜드까지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회사라는 배에 타서 순항한다고 볼 수 있겠으나... 모두 다 알다시피 회사 생활을 오래 유지하는 데에는 실력 이외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2) 디자인 회사 대표

디자인 스튜디오 플러스엑스 대표, 변사범과 신명섭 (출처: 서울경제)
영화 포스터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 '빛나는'의 대표, 박시영


성공 커리어 두 번째는 직접 회사를 오픈하여 대표가 되는 것이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수많은 디자인 스튜디오들... 플러스 엑스, 오드너리 피플, 피그말리온, 빛나는 등이 예시다. 회사에 속한 신분이 아니므로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입맛대로 할 수 있다. (물론 클라이언트 입맛에도 맞아야 한다)


시니어의 위치에서 실무 매니지먼트를 하는 것은 성공 커리어 첫 번째와 동일하나... 대표로서 실무 이외의 업무(경영, 영업, 회계, 정산, 인사 등)까지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실적에 따른 불안감 역시 짊어져야 할 무게다.





끝으로...

내가 사는 세상 속 디자이너는 패셔너블하고, 유머러스하고, 재밌게 일하며, 돈도 잘 버는 분들이 많다. 물론 정반대의 디자이너도 있지만 그것은 어느 직군이나 마찬가지다. 변호사만 하더라도 누구는 김앤장에서 시간당 수십만 원의 수임료를 벌겠지만, 누구는 건물 한 구석의 보이지도 않는 사무실에서 의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테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변호사라는 직업을 폄하하지는 않잖아? 결국 문제는 디자인 업계가 아니라 디자인을 욕하는 사람들이다.


디자인은 세상 모든 것이다. 곤충의 알 배열에도, 김밥의 단면에도, 버스 위치 알림 화면에도, 먹고, 자고, 입고, 쓰고, 사용하고, 활동하는 매 순간, 매 공간에 디자인이 있다. 디자인은 결코 단순한 미가 아니다. 당신의 생활 속에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편리하게" 작동 중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디자이너들이 긍지를 갖길 바란다. 이 세상의 가격 후려치기에 휘둘리지 않고 대체 불가능한 디자인, 생각하는 디자인을 통해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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