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옷가게에 살고 있는 털이 하얀 강아지는 오늘도 투명 유리문 밖의 나를 응시하며 짖어댄다. 가게 안에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이 아이가 가끔 밖을 배회하는 날이면 그 옆을 지나야 하는 나는 심장이 오그라든다.
무사히 옷 가게를 지나 버스를 타고 인스타그램을 연다. 누군가 고양이 사진을 올렸다.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빠르게 넘긴다.
마당이 넓은 시골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앞마당엔 수돗가와 화원이 있고, 뒷마당엔 딸기와 앵두나무가 자라나는, 어딘가에서 강아지와 어린아이가 함께 뒹굴며 뛰어 놀고 있을 것 같은 영락없는 전원 주택. 그런 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우리집엔 강아지가 없었다. 엄마가 강아지를 무서워해 키우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 근처엔 가 본 적도 없는 나는 그렇게 강아지와 멀게 자랐다. 동네 개만 보면 냅다 도망쳤고, 강아지가 자주 출몰하는 곳은 피해 다녔다. 강아지를 무서워할 만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나는 '강아지=무서운 존재'라는 명제를 달고 태어난 아이처럼 '강아지는 당연히 무서워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며 자랐다. 물론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남동생은 강아지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ㅋㅋ)
어른이 되면 괜찮아 질 줄 알았다. 몸과 머리가 자라고 동물을 자주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겁이 없어질거라 생각했다.
이 무책임한 생각을 비웃듯 나는 나이가 들수록 동물에 대한 공포감이 심해졌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면서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신문에 자주 등장했다. 반려동물 인구 천만 시대, 천오백만 시대, 이런 기사 말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애완견, 애완묘를 키우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동물들이 '반려'의 존재가 되면서 일상 생활에서 이들을 마주할 일도 많아졌다. 공원, 시장, 골목길, 미용실, 헬스장, 네일샵, 카페, 식당, 심지어 어느 회사까지,,, 이 모든 곳에서 반려동물을 만나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한강에 나가는 건 제발로 지옥에 가는 것과 같다. 한강에서 내딛는 걸음 걸음마다 주인과 함께 놀러 나온 강아지들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강만 지옥이 아니다. 모든 길이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어딘가에 조용히 앉아 있는 고양이를 마주하면 온 몸에 소름이 쭈삣 돋는다. 날아가는 낙엽, 뒹구는 빈 봉지, 큰 돌, 쓰레기더미, 표지판,, 세상 모든 게 고양이로 보인다. 낙엽을 고양이로 잘못 보고 놀란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고양이는 강아지만큼 무섭지 않았다. 강아지는 사람을 보면 짖고 따라오지만 고양이는 알아서 피하니까. 고양이가 무서워진 건 대학 시절(영문학을 전공했다) 미국 소설가인 '애드가 앨런 포'의 '검은고양이'라는 소설을 배운 후 부터다. 유독 상황극을 좋아하셨던 담당 교수님의 생생한 연기 덕분인가. 내가 수업을 들은건지 연극을 본건지. 소설의 내용이 현실보다 더 현실같이 다가왔고, 결과적으로 이 수업은 고양이에 대한 나의 공포감을 극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소설의 내용은 너무 무서워서 직접 설명할 수 없다. 확실한 건 현재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동물이 고양이라는 사실이다.
반려동물소수자로 살아가는 건 참으로 힘겹다. 이게 무슨 느낌이냐면, 강아지 크기의 바퀴벌레가 길 곳곳에 돌아다니고 있는 걸 보는 그런 느낌. 한강 나갔는데 강아지만한 바퀴벌레들이 나에게 달려드는 그런 모습. 이게 바로 강아지와 고양이에 대한 나의 시선이다. 바퀴벌레 보고 소리지르고 피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강아지 고양이 보고 소리지르며 도망치면 이상하게 쳐다본다. 나는 그런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 내가 상점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 어딘가에 갇히게 된 동물도 있으니, 나뿐만 아니라 동물도 힘겹다. 길을 걷다 갑자기 놀라는 나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까지 놀라게 되니 지인들도 힘들다.
공포를 극복해 보고 싶어서 지인의 집에 살고 있는 정말 순한 강아지를 만져본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서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난 이미 늦은 것 같다. 이번 생은 틀린 듯 하다.
나는 오늘도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강아지와 고양이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 생각할거라는 아름다운 편견 속에서 살아간다.
오늘도 퇴근 길에 그 옷 가게를 지나야 한다. 강아지만한 바퀴벌레는 제발 가게 안에 있기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