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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미 Aug 29. 2022

30분을 뛰어버렸노

절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일을 해버렸다

오래전부터 '시티러너'에 대한 막연한 꿈을 갖고 있었다. 시티러너가 되고 싶은 이유는 딱 하나. 멋있으니까!! 예쁜 러닝복을 입고 머리 휘날리며 힘차게 달리는 러너의 모습을 상상하기만 해도 설렜다.


러너가 그토록 멋져 보다는 건 내가 달리기를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모든 체육 종목을 못하지만 그중에서도 오래 달리기를 제일 못다. 초등학교 때 체력테스트로 오래 달리기를 하는 날이면 상위권 친구들에게 몇 바퀴씩 따라 잡히는 건 기본. 모두가 결승선을 통과한 후 한참이 지나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건 늘 나였다.


직장인이 된 후 10km 마라톤 3회, 5km 마라톤 1회에 나간 것은 달리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영동대교 등 특정 스팟에서의 멋진 인증샷을 위해서였다. 통제된 도로 위를 달리는(걷는) 기분 짜릿했다.   


코로나로 인해 대규모 마라톤 대회가 열리지 않았던 지난 2년 동안 시티러너의 꿈도 시들해졌다. 그러다 우연히 올해 5월 말부터 이웃사촌과 '미라클모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에겐 시티러너 말고 또 하나의 꿈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아침형 인간. 나와 이웃사촌은 아침 6시에 밖으로 나와 달렸다.


6월부터 본격적으로 '런데이'라는 앱과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다. 런데이에는 나 같은 초보 러너를 위한 '30분 달리기 커리큘럼'이 있다. 목표는 이 커리큘럼을 끝내는 것. 총 8주 차, 24회로 구성된 커리큘럼의 목표는 30분을 쉬지 않고 달리는 이다. 8주 마지막 회차에서 30분을 달리게 된다. 평균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커리큘럼일 테니 나 같은 평균 이하 사람은 커리큘럼대로 따라 한다 해도 30분을 달리지 못할 테지. 그런 확신을 갖고(?) 런데이를 시작했다.  


1회 차는 1분 달리기로 시작한다. 1분을 달리고 2분 걷는 것을 5번 반복한다. 힘들었다. 뛰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고, 정강이가 아프고,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날갯죽지가 아팠다. 그래도 파이팅 넘치는 런데이 코치의 응원을 받고 꾸역꾸역 진도를 따라갔다.


한 주 지날수록 달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적응할라치면 달리기 시간이 늘어나버리니까 매주 힘들었다. "할 수 있습니다! 정~말 할 수 있습니다"라는 런데이 코치의 응원이 없었다면 진작에 때려치웠을지도 모른다.


주 3~4회 달리기를 하며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걷는 것보다 못한 페이스가 나오길 일쑤였다.


그렇다고 제자리에 머물 순 없었다. 이왕 시작했으니 30분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6주 차부터는 달리기 시간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제일 힘든 시기라고 한다. 갑자기 7분을 달린다. 그전에 5분 달리기도 말이 안 됐는데 7분은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건가? 7주 1회 차는 10분을 달리고 3분을 걸은 후 다시 10분을 달린다. 이때 처음으로 실패를 했다. 첫 10분을 간신히 달렸는데 정강이가 너무 아파서 나머지 10분을 달리다 포기했다. 실패의 찝찝함은 아주 컸다. 성공했을 때의 보람보다 실패했을 때의 찝찝함이 더 크게 나를 지배했다.


하지만 이 날의 실패 경험이 다행이었는지도? 실패했을 때의 기분이 어떤지 알았고, 30분 달리기를 성공하지 못한다면 패배감에 돌아버릴 수도 있음을 예감했다. 다행히 이틀 후 7주 1회 차를 재도전한 결과 성공했다.


런데이 유명 짤


마지막 8주 차. 달리기 시간 30분에 가까워질수록 설레면서도 무서웠다. 성공 못할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30분을 뛴다는 게 말이 안 됐다. 30분을 어떻게 뛰어? 나는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인데. 8주 1회 차는 5분 달리고 3분 걸은 후 무려 20분을 달린다. 2회 차는 그냥 쭉 풀로 25분을 달린다.

한강에서 첫 25분 달리기 성공

25분 달리기를 성공했다. 그것도 너무 예쁜 한강에서 성공해버렸다. 기분이 째져버렸다.


8주 3회 차. 런데이 30분 달리기 커리큘럼의 마지막. 30분 달리기다. 결전의 날이 왔다. 이 날을 위해 나는 긴 여름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30분을 뛰지? 25분도 죽을 뻔했는데 5분을 어떻게 더 뛰지?

그렇게 달리기 시작!

그냥 달리다 보니

0.5시간을

30분을

1800초를

.

.

뛰어버렸노

!!!!

  

30분을 뛰어버렸다. 해냈다. 정말 해냈다. 6월 5일에 시작한 30분 달리기 프로젝트가 8월 7일에 끝났다. 뜨거웠던 올해 여름이 달리기로 수놓아졌다.


내가 30분을 달리다니!!!!

내가 절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 진짜 무슨 일이 생겨도 못할 것 같은 일을 해냈다.

물론 성공 경험이 내 인생에 단한 변화를 줬다거나 엄청난 자신감을 줘서 일상을 변화시키고 그런 것 까지는 아니다.



그래도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나 어쩌면 자전거도 탈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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