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나 자신이 누군가가 열어보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책은 여느 책처럼 어떤 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밝은 희망인지 어두운 절망인지 모를 단어들로 가득 차, 어떻게 됐든지 책은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책의 내용에는 누군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신문의 어떤 어려운 단어를 막힘 없이 읽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거나, 음악이 나오면 곧잘 춤을 잘 추었다는 이야기, 조금만 툭 건드려도 엉엉 울어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았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오랫동안 한 악기를 연주하여 한 때는 전문 연주자가 되기를 꿈꿨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자의적 포기와 어른의 사정으로 그만두었다가 다시 한번 도전했을 때, 누구나 할 수도 있던 실수로 인해 ‘다시 연주를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말까지 듣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어디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던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시와 에세이에 경외감을 느낀다는 것과, 미쳐 알지 못했던 좋은 음악을 찾았을 때의 벅참이 너무 좋다고 했으며,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멜로디가 너무 좋아 머릿속으로 그 멜로디를 악보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 문자로는 설명 못할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야기할 때면 거기에는 온갖 비문이 넘치는 구절들이 즐비하다.
그 책은 사실 많은 사람이 읽지 않았다. 읽기를 원할 때에는 언제나 책장에 박혀서 그저 먼지만 쌓일 뿐이었다. 아주 가끔, 누군가가 그 책이 눈에 띄어 책을 꺼내 읽다, 머리말 또는 첫 번째나 두 번째 챕터까지만 읽고 이내 닫아버린다.
나의 책은, 당신이 열어야 다음 이야기가 완성된다. 나는 책의 첫 문장부터 당신이 열어 읽는 가장 마지막의 문장까지의 내용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와 나의 궤적이 계속 그 책에 쓰이는 것을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문장을 차곡차곡 쌓으며, 오롯이 당신의 문장만이 담긴 책을 들여다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