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나를 알게 되면서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열에 아홉은 놀라는 반응을 보인다.
'아닌데?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아니다. 나는 사실 많이 두렵다. 어떤 것에 두려워하나? 그냥 모든 것에 다 두려워하는 성격이다.
두려워하고 걱정도 많이 하고 생각에 생각을 꼬리를 물어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스타일이다. 그걸 다만 타인들에게 잘 안 보여주는 것뿐이지.
어떤 것이 나를 이렇게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어렸을 때로 돌아가 보자. 부모의 돌봄이 많이 필요했을 4-5세 시절, 나는 우유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는 내가 직접 우유를 따라 마시려고 했다.
언제나 엄마나 아빠가 내가 우유가 마시고 싶을 때 직접 컵에 따라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직접 우유를 따라 마시고 싶었다.
뭘 해도 완벽하지 않고 서투를 4-5세 시절, 나는 그때 내가 처음으로 무엇을 마시고 싶어서 컵에 액체를 따르는 최초의 행위가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할래!!!'라고 칭얼거리며 시도를 했지만 결과는? 우유를 엎지르고 식탁보를 하얗게 물들였다.
아빠는 그것을 보고 내게 버럭하고 화를 냈다. 난 그 이후로 한 동안 컵에 액체를 따르지 않으려고 했다.
가장 예민했을 15살 때의 일이다. 나는 새 학년 첫날이 가장 싫었다.
어느 반에 배정되어 어떤 친구들과 함께 하는지, 담임선생님은 누군지 최고조의 긴장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 때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어떤 힘이 나를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 힘들게 만들려고 했던 시기처럼 느껴졌다.
나랑 거의 친했던 친구는 0에 수렴할 정도였고, 선생님도 무뚝뚝한 남자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다음 날부터 왕따라는 것을 당했다. 웃으면서 다가갔는데 그냥 그들이 '거부' 했다.
만약 한두 달, 적어도 몇 줄을 같이 지내다가 나의 어떠한 행동을 근거로 친구들이 내게 정이 뚝 떨어져 날 따돌리기라도 했다면 조금이라도 정당성을 가지겠지만 나의 시점으로서는 명확한 왕따를 당할 근거가 없었다.
그냥 그들은 나를 왕따 시킬 애로 처음부터 점찍었나 보다. 그 학급에 아무 친한 친구도 없었던 내가, 딱 좋은 표적이었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잠깐 이 사태에 화만 냈고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 해'라고 유치원 때부터 배웠던 그 진리 같은 교훈이 와장창 깨진, 나의 가장 큰 모럴 해저드였다.
아무렇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하려고 가장 많이 웃으려고 했던 때가 바로 이 시기인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초면인 사람에게 더 많이 미소를 짓는다. 이 미소를 짓는 행위가 첫 만남의 호감도를 높이기 위해 해야 하는 당연한 행위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겐 그렇지 않다.
나는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혹시 저 사람이 날 미워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소한 첫 만남에서부터 타인이 나를 밀어내지 않게 하려고 하는 행위인 것이다. 사실 첫 만남에서 내가 많이 활짝 웃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이 인지를 못할 때도 많다.
한 번은 우연한 만남으로 소중한 인연이 되었던 한 지인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네가 먼저 웃어줬잖아. 그래서 우리가 이야기한 거잖아.'라고. 그러면 내가 놀라서 대답했다.
"정말? 내가? 그렇게 웃었다고?"
나의 미소는 타인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한 나만의 자연스러운 방어기제로 사람들을 더욱 편안하게 해 주고, 또한 나라는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었다.
나는 버림받지 않으려 웃었고, 대화 사이의 아주 짧은 침묵 하나 만으로 모든 게 어그러져 버릴까 봐 먼저 입을 열었다. 이 부분은 그냥 대수롭게 넘겨도 돼.라는 인생의 순간에서도 나는 항상 초조했고, 두려워했다.
이러한 무시 못할 생채기가 생기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활발한 모습보다는 어딘가는 조용해지고 때로는 가라앉는 기분이 점점 늘어나 내 인생을 지지하는 감정의 베이스가 '두려움' 이 되었고, 외향적이었던 ENFP가 이젠 아무리 MBTI 테스트를 해봐도 내향적인 INFP가 되었다.
때로는 원망스러워진다. 우유를 따르다가 엎질렀을 때, 아빠는 나를 무조건 혼내지 않고 따르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다음에는 그러지 말라고 조곤조곤 알려주셔도 좋았을 텐데.
15살 그녀들은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줬어도 좋았을 텐데. 그리고 두려움에 보여줬던 나만 알고 있던 방어기제를 캐치한 나보다 섬세한 누군가가,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됐었다.라고 말해줬어도 좋았을 텐데 라고.
여전히 나는 보이지 않는 가깝고 먼 미래의 어떤 일과 사람과 그 모든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 방어기제를 오히려 너무 적극적으로 보여서 날 떠나간 사람도 있고, 이렇게 방어기제를 항상 보여줘야 하는 내 모습에 내가 지쳐 먼저 단절시킨 관계들도 여럿 있다.
내 안에는 내가 너무 많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떠한 나가 또 다른 두려움이 가득 찬 나에게 두려워하는 것 그 자체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정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두려워해도 괜찮다고 격려해주고, 꼭 먼저 웃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이렇게 살아가지도 않으면 인생은 더욱 재미없어질 거라고 말해준다. 때로는 격려를 먼저 했던 '나'가 도리어 두려워할 때도 있다. 그러면 다시 격려를 받았던 또 다른 '나'가 격려를 해준다.
다시 앞으로 돌아와 '네가 그렇게 걱정을 많이 하면서 복잡한 생각을 사는 줄 몰랐다. 항상 밝아 보였는데? 너무 긍정적으로 보이는데?'라고 말하는 친구들에게는 갑자기 얘가 왜 이러나,라고 보일 수도 있겠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그냥 내 모습이라고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하는 고백과도 같은 것이었다.
난감한 건 이런 나를 비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보는 양 '아냐 넌 그렇지 않아. 넌 활발해. 넌 긍정적이야. 갑자기 왜 그래?'라고 나를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얼마나 인생의 수많은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길 수 있는지 그들은 모른다. 나도 사실 이 태도를 가진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도덕적인 선을 넘지 않는 한, '그 일이 왜 그렇게 됐을까', '그 사람은 왜 내게 그랬을까'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생각보다 이 사고의 회로가 조금은 간단하게 마무리된다. 그래서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가 고백했을 때 그들이 그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고백을 하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어떠한 족쇄 하나가 풀어졌음을 느끼게 되었다. 마음속 어딘가 나는 한 계단을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언제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질지 모르겠으나, 내 아이는 그래도 적어도 '그럴 수 있다'라는 마인드를 가져 나보다는 조금 더 대범해져서 건강하게 자라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장난감을 조립하다가 좌절해도 괜찮아. 설사 우유를 엎질러도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다가 실수하고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우유 따르는 법은 엄마가 다시 알려주고 또 해보면 되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