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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Aug 26. 2021


'세종대왕' 알아요?

-몽골 초등학생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법

2학기 개학이다. 

코로나로 인해 아직 학교는 전면적인 대면 학습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3학년인 겔은 오전에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고 오후에 한국어 수업을 받으러 학교에 오는 일정인데, 혹시라도 잊을까 싶어 지난주와 당일 오전 두 차례나 문자를 보내 시간을 알려주었다. 


겔은 정확한 시간에 수업에 왔다(역시! 어찌 예쁘지 않을 수가!). 한국어 실력 때문에 3학년에 편입했으나 실제는 5학년 나이이다. 방학 전에는 저학년들과 한 차시를 함께 공부했는데 이제는 진도가 많이 차이 나서 2학기 들어서는 1:1로 수업하는 시간표를 짰다. 


ㄴ받침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위인전'이라는 낱말이 보기로 제시되었다. 


"겔, '위인' 알아요?" 

"몰라요."

"'세종대왕' 알아요?"

"음... 몰라요."

"세종대왕은 한국 옛날 왕이에요. 한글을 만들었어요." 


나는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알려주며 '위인'의 의미를 가르쳐줄 참이었다. 휴대폰으로 세종대왕을 검색해서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의 동상을 보여주었을 때,


"아!!! 선생님, 저 알아요!" 

겔은 너무나 반갑다는 듯, 할 말이 너무 많다는 듯, 머릿속에서 맴도는 몽골어를 어떻게 한국어로 바꿔 말할지 너무나도 답답한 표정이었다. 


음... 선생님,
옛날 한국사람 한글 없었어.
차이나(china) 한글 있었어.
너~무 어려워, 이 사람이 한글 만들었어.


갑자기 끝에 '-요'를 붙이는 존댓말도 잊었나 보다ㅎㅎㅎ

이 말은 겔이 한국어 교실에 온 뒤 가장 길게, 가장 흥분해서 이야기한 것이다. '한자'라는 단어를 몰라 '차이나 한글'이라고 말한 재치. 지금 겔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정말 최선을 다해 말한 것임을 안다. 


그런데, 갑자기 공책에 하늘, 땅, 사람을 그린다. 응? 훈민정음 제자원리를 나는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물으니,

"유튭! 방학 매일매일 한글 공부했어요. 유튜브 봐요, 몽골어예요."

방학 동안 꾸준히 몽골어로 된 유튜브를 찾아 한국어를 공부한 모양이다. 너무너무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좀 더 이야기해 보니, 겔은 역사를 매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손짓 발짓 나에게 열심히 설명을 한다. 

"음... 일본 한국 슉슉슉슉(총 쏘는 몸짓)..." 

많이 서툰 의사소통이지만 겔과 오래 이야기를 했다. 몽골 칭기즈칸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동안 이야기하고 싶어서 어찌했나 싶을 정도로 아는 것을 마구 쏟아낸다. 그리고, 갑자기 휴대폰을 꺼낸다. 


"선생님, translator, 괜찮아요?" 

번역 앱을 사용해도 되는지 묻기에, 뭔가 정말 정확히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나 보다, 했다. 


겔이 한참을 고심해서 몽골어로 문장을 적은 후, 나에게 보여준 번역 앱 화면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사람의 언어를 배우려면 역사를 알아야 한다. 


와우! 

예상치 못한, 아직은 꼬마라고 생각했던 학생이 보여준 직선적이고도 당연한 문장의 공격 앞에 갑자기 마음이 꽉 차올랐다. 


순간, 겔이 정말 커 보였다. 

위대한 어린이. 

오늘은 내가 겔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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