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밍 Nov 22. 2021

즐겁고 행복하면서
    외롭고 고달프다.

 

누군가의 생각을 제목으로 옮겨 적어본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초등학교에 한국어 강사로서 발을 내딛으면서 먼저 현장에서 뛰고 있는 여러 선배님들의 글들을 많이 읽어보았다. 중국어를 20여 년 가르쳐왔지만, 한국어와 초등학교 다문화/한국어 교실의 수업은 또 다른 분야였으므로 많은 공부가 필요했고 또 지금도 계속 배워가고 있다. 


선생님들의 많은 글 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아 마음에 남은 글귀가 있다. 


즐겁고 행복하면서, 외롭고 고달프다

왜 이 말이 마음에 남았을까. 그때는 한국어 강사 경력이 1년 차여서 이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지나갔는데, 언젠가 나도 이런 감정을 느낄 것이다...라는 예감 때문이었나. 나도 모르게 쪽지에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 놓았었다. 


어느덧 계약 연장 후의 ㅅ학교 수업도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에게는 1주일 전부터 다음 주 화요일이 마지막 시간임을 알려주고 각 가정에도 수업이 종료됨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 두었다. 한국 전통과자와 아이들 취향의 예쁜 연필 세 자루를 포장하고 (아이들은 항상 유나가 가지고 다니는 분홍색의 공주 연필과 분홍색 지우개를 그렇게 빌려서 써 보고 싶어 했다) 한국어교실에 끝까지 참여해서 열심히 해 주어 고맙다는 편지를 쓰며 수업을 정리해나갔다.  


마지막 수업 날. 

아이스크림 모양의 종이에 지금까지 학습했던 받침 단어를 기억하여 써보고, 각자 좋아하는 맛의 아이스크림을 만들면서 수업을 마쳤다. 수업 중에 틈틈이 찍어두었던 사진들을 같이 보면서 깔깔거리기도 하고, 이집트 여행으로 결석한 날이 많았던 수수의 사진이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지금은 못 만나는 겔의 사진이 등장하자 겔 오빠가 보고 싶다며 추억을 소환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편지를 읽어주는데, 갑자기 유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나딘도 눈에 눈물이 가득 차서 금방 쏟아질 것 같았다. 


"선생님, 왜 한국어 교실 없어요?

선생님 없어요? 우리 한국어 잘 못해요. 어떻게 해요!" 


나도 갑자기 울컥했다. 잠시 모두 다 꼭 안고 울먹이다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아이들이 한국어교실을 좋아하는 것은 내 수업이 정말 재미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나의 짧은 견해로는, 한국어로 소통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이 잘 안 나올 때는 기다리고, 눈을 맞춰주는 어른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힘들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1학년 아이들, 더구나 한국어로 소통이 잘 안 되는 아이들과 하루 4교시 수업을 하고 집에 가면 진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한글 받침글자를 익히려고 열심히 받아쓰기하는 모습, 어떻게든 아는 단어로 설명하고 말하고 싶어 하는 모습, 갑자기 본인도 '어? 내가 왜 한국어로 이렇게 잘 말하고 있지?' 라고 느낄 때 토끼눈으로 놀라던, 그런 모습에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조금은. 아니, 조금 보다 조금 더. 외로웠다.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감, 그리고 힘듦을 함께 나눌 동료가 없다는 것이. 이것이 책상 앞 글귀, '외로움'의 정체였다. 


한국어교실을 담당하고 계시는 선생님과, 각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은 정말 바쁘셨다. 아이들의 상황을 초반에 한 번 물어보셨을 뿐, 그 후로는 나에게 전적으로 한국어교실을 맡기셨고 중간중간 활동보고서를 써서 제출했으나, 피드백은 없었다. 몇 번 아이들의 문제로 학급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신청했었다. 그리고 너무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과 함께 한국어교실이 진행되는 동안 '그냥' 아이들 잘 돌봐주십사 요청을 받았다. 담임선생님, 담당 선생님과 연계하여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발전적인 방향을 바랐었는데, 어쩐지 조금 소외된 기분이 들었다.  


프로그램이 다양한 다문화 중점학교나 한국어 강사, 이중언어 강사, 다문화 강사가 함께 일하는 학교는 어떨지 모르겠다. 내년에는 이 외로움이 줄어들기를 바라며. 더 열정적인 나의 모습을 기대한다.  


[커버 이미지: unsplash]

[마지막 수업 아이스크림 도안 : 에듀퐁퐁님 블로그]

작가의 이전글 알 수 없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