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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밍 Oct 18. 2022

저는 '님생선'입니다.

하루 4시간의 수업이 조금 늘어지고 에너지가 떨어져 갈 때쯤 한여름 더위와 함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제법 하늘이 높아진 어느 가을날 개학을 맞이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에린이 제일 먼저 반가운 목소리로 교실에 들어섰다. 아직은 유치원생 같은 초1, 팔을 한껏 벌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다음은 정원이 왔다. 어쩐지 슬픈 얼굴이다.

"선생님, 저는 한국어교실 할 수 없어요.

엄마 말해요. 돌봄 가, 태권도 가요."

이런. 2학기에는 정원을 볼 수 없겠다. 돌봄과 태권도 학원 시간 때문에 한국어교실에 올 수 없는 모양이다.


"선생님! 우리 엄마 배 잘랐어욧!"

"네-에???"

역시나 나딘의 등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다다다다 뛰어들어오며 배를 내밀고 자르는 시늉을 한다. 아이들과 내가 모두 놀라 다시 물으니,

"엄마 아기 나왔어요. 응애응애~ 아! 귀여워."

다행히도 엄마가 나딘의 동생을 낳을 때 수술을 했다는 설명이었다. 나딘의 동생은 이미 두 살인데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개학 후 첫 시간은 항상 왁자지껄하다. 아이들과 방학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 이야기했다.

"수영장 많이 갔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또 가고 싶어요."

"계-속, 텔레비전 봐요. 그림 그려요. 언니랑 놀아요."

"너도 텔레비전? 나도! 언제 엄마 말했어, 밤이야! 자요!"

"선생님! 나 이제 태권도 파란 띠예요. 얍얍!!"
각자 다른 수준의 한국어로 왁자지껄 서툰 방학 소개를 했다.


방학이라 엄마 아빠와 여행을 가고 함께 시간을 보낸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시니 방학 동안 아이들은 심심해한다. 부모님이 안 계신 동안 본인 역시 저학년임에도 더 어린 동생들을 돌봐주어야 하는 싸르나와 나딘도 조금은 개학이 반가웠을 것이다.


수업을 마쳤는데도 아이들이 집에 가지 않는다. 엄마가 걱정하신다고 시간이 되었으니 얼른 집에 가라고 재촉했다. 아이들은 "잠깐만요!" 하더니 이런 선물을 내민다.


에린이 집에 가면서 붙여준 스티커. 나딘과 싸르나가 그린 내 모습과 노란 병아리.


왼손잡이라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습관이 있는 에린에게 나는 '선생님'이 아닌 '님생선'이 되었다. 그 말이 너무 재미있어서,

"님생선이요?" 이라고 과장해서 크게 말했더니 모두 와하하 웃는다. 

아이들 나름의 방법으로 표현한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이 나에게 와 닿는다.  




선생님! 저 합격했어요.
많이 감사합니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국적취득을 준비했던 샤오환에게 합격을 알리는 연락이 왔다. 


퇴근하며 바라보는 하늘이 유난히 높고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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