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62
어느새 제법 여름에 가까워진 6월에 어느 날, 감사하게도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이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예전에 친구와 저녁을 먹고 우연히 들리게 된 서점에서 발견한 책에 나왔던 문장 중에서 "인생에 있어서 다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라는 살면서 종종 들어봤던 어쩌면 흔한 질문이 이번에는 마음을 움직였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발목을 크게 다쳐 통깁스를 하면서 평소와는 다른 일상에 적응하던 시기여서 꽤 많은 약속들을 취소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책장에 묻혀 있던 책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작년부터 혼자 나와서 지내게 되었고 그 생활에 만족하며 익숙하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여러 가지 면에서 지금의 상황을 바꾸지 않으려는 쪽으로 결정하고 선택했다. 더 나아가거나 도전적인 모습보다 현재의 만족에 비중을 더 두는 성향으로 조금씩 바뀌었다. 스스로 만족의 범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큰 틀에서 지금의 삶에서 무언가 바뀌는 것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전혀 다른 일을 한다던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는 것보다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는 게 더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지금 잘하고 있다고 곧잘 위로와 칭찬을 주었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항상 있었고, 그런 생각들이 찾아올 때마다 지금도 충분하다고 괜찮다고 애써 넘겼지만 소금물을 마시면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갈증은 해소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더 심한 탈수 증세를 동반하듯 그래도 올해 나름 잘 지내고 있는데도 허전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책에 몰입해서 보게 되었던 것도 있고 그 갈증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책에 나온 대로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를 고르는 일에는 굉장히 많은 고민과 어려움이 따라왔다. 가장 먼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중요한 순서에 상관없이 쭉 공책에 적어보았다. 건강, 가족, 사랑, 친구, 경제적 자유, 경험, 행복, 감정, 올바른 가치관 등등 나름 줄이고 줄여서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선순위를 나열하다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공통적으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단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때 또 마침 깁스를 하고 있어서였을까 '건강'이 없다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크게 아프면 자연스레 일을 쉬어야 하고, 수입이 없어지니 다양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줄어들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더 나은 모습이 아닌 아프면 함께 찾아오는 우울감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해 부정적인 말과 행동들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적어도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다음으로 책에서 나온 대로 건강을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일까? 생각의 범위를 줄여 보았고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은 '술 끊기'가 떠올랐다. 성인이 되고부터 술을 참 많이 마셨다. 다음 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실패했던 이유가 뭘까 돌이켜보면 당장 눈앞에 있는 4000원의 '값싼 행복'이라는 유혹에 빠져서 저녁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라고 스스로를 참 많이 속여왔다.
이제는 이유가 명확하고 뚜렷하다. 위에 언급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절대 빠지면 안 되는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그 건강을 위해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자주 마시는 술을 끊는 일이다.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의 내가 지금처럼 술을 마시는 행위로 인해서 건강이 매우 나빠졌거나 술에 취해 크게 다치는 일이 생겨 신체가 멀쩡하지 못하다면 그땐 누굴 탓하고 원망할 수 있을까. 앞으로 저녁마다 잡아두었던 술 약속을 빼고 그 자리에 운동 약속이나 책 읽기 같은 시간을 더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내 삶에서 무언가 더해지거나 빼는 것은 단순히 그 행위가 없어지고 생기는 것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 자체가 바뀌는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지키고 싶은 것에 마이너스가 되는 무언가를 빼려고 한다면 그 빈자리에 무엇을 채울지 동시에 고민해 봐야 한다. 삶의 모습과 모양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달라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에 따라서 마이너스 요소가 누군가에게는 플러스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인생을 어떤 물감으로 색칠하는지 본인 손에 달려있다. 이미 칠해놓은 부분은 바꿀 수 없겠지만 앞으로 칠하게 될 색은 지금이라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잊고 우선순위에 없는 것들을 위해서 살아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생각이나 행동들은 자연스레 심플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무엇인지 알고 있고 마음속에 있으니 잊지 않게 자주 들여야 봐야 한다. 다른 누군가 옆에서 헤아려줄 수 있겠지만 짐작할 뿐이다.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단순한 반복의 연속이고 그저 원하는 방향으로 매일 조금씩 걸어가면 된다.
지금 나한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인지 방향이 잡히게 되면 놀라운 속도로 내가 원하고 살아가고 싶은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흘러가듯 방황하는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는 아닐까? 매일 새로운 기회와 선택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마음을 다해서 감사함을 느끼고 후회가 되지 않도록 온 마음을 다해서 오늘을 살아보려고 한다.
"하나의 그림에는 수 많은 색채가 담겨져 있다. 하나의 색깔로만 칠해진 그림은 어디에도 없다. 수 많은 색채들이 어울려서 하나의 명작을 만들어낸다." -헤르만 헤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