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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Mar 08. 2019

욕심

일상의 기록#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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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했던 가장 큰 착각은 아무래도 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질적인 것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항상 다짐하고 생각하지만, 미래가 아닌 현실적인 상황에서 금전적인 부분들을 배제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동안 욕심이 없는 척 살아오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꼭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만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 있어서도 그랬고, 스스로에 대한 욕심 또한 그랬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희망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욕심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그 마음으로 인해서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나의 욕심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유난히도 머리를 자르기 싫어했던 그 어린 시절의 난 머리를 짧게 자르면 하루 종일 울고 학교를 빠지기도 했다. 머리가 다 자랄 때까지 모자를 쓰고 학교에 다니기도 했고, 그 기억은 지금에서야 많이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머리를 자르는 일이 나에게는 중요하고 커다란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중학교 때부터 외모에 관심이 참 많았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 마음이 너무 커져버리면 욕심으로 변하기 일쑤였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이 좋아라 할만한 행동들을 하려고 노력했다. 욕도 거의 안 하려고 노력하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고,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행동들의 결과로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게 봐주고 좋은 관계를 갖기도 했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나를 힘들게 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그 한 명으로 인해서 하루의 기분이 결정되고, 나를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보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더 시선이 향했다.


욕심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시간들이 축적이 되다 보니 어느새 모든 부분에서 완벽하기를 바라는 내가 되어 있었다. 완벽주의 성향이 조금씩 자기 잡기 시작할수록 내 삶은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해낼 수 없는 것들을 희망하고 바라다보니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서 더 노력하고 극복하려는 과정을 겪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원하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습에 다가갈 수 없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느꼈을 땐 이미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최근까지도 가진 것에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던 중에 우연한 계기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피아노를 배우는 것조차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배워야 하는 내 욕심에서 비롯되었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피아노를 배우면서 나의 욕심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피아노를 멋지게 치면서 노래하는 나를 상상하며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했지만, 정작 학원에서 배우는 건 아주 기초적인 동요였고 그 동요마저 어려워서 쩔쩔매고 있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노력은 하지 않았으며 지금의 실력과 내가 해내고 싶은 곡의 수준 차이만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괜히 욕심을 부려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구나 싶을 즈음에 피아노 선생님께서 처음 왔을 때 비해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어쩌면 그 칭찬에 큰 의미를 두고 말씀하신 게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왜 그동안 현재의 내 모습에 의미를 두지 않고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며 살았던 걸까 싶었다. 피아노를 5년 이상 배운다면 내가 해내고 싶은 곡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막 피아노를 시작하는 나였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그런 모습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꾸준히 몇 년이상 피아노를 배운다면 내가 못 할만한 것은 거의 없을 거라고 말이다. 잘하려고 하는 부담을 스스로 내려놓으니 배워가는 과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안되던 코드를 연속해서 칠 수 있게 되고, 악보 없이는 칠 수 없었던 곡들을 악보 없이 쳐내는 모습에 스스로 재미를 찾기 시작했고 그런 순간들이 굉장한 만족감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그 칭찬이 없었다면 금방 흥미를 잃고 피아노는 재미없고 따분한 것이라고 스스로 정해버리고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개인의 차이겠지만, 피아노는 내 삶에 예전보다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인정하려고 한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고, 모든 것에 완벽할 수 없으며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말이다. 삶은 결과가 행복이 아니라, 과정이 행복이라고 믿고 싶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가 이뤄냈던 것들에 만족해서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경험과 추억, 감정들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욕심쟁이로 살았던 그동안의 삶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고,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덕분에 더 나은 게 무엇일까 고민하고 경험해볼 수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은 더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좋은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은 하되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한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5년 뒤, 10년 뒤 내 모습에도 만족하지 못할 테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 모습도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 있고, 괜찮다고 말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부족한 것이 있다면 채우면 그만이니까 더 이상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지 않고,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에 더 사랑을 쏟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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