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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별 Aug 02. 2019

어떤 하루

일상의 기록#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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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굉장히 많이 올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상과 다르게 비는 거의 오지 않았고, 굉장히 습한 하루였다.

저녁에 따로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새벽 1시에 집으로 걸어오는 도중에 벤치에 앉아서 혼자 소주를 병째로 마시는 아저씨를 보게 되었다. 나 역시 일을 마치고 맥주 한잔이 간절히 생각이 났지만 시간도 꽤 늦었고, 어제의 과음으로 인해서 오늘은 좀 쉬자고 마음을 먹어서인지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는 그 모습이 참 부러웠다. 


예전에도 종종 아르바이트를 늦게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다 보면 벤치에 앉아서 혼자 술을 마시는 분들을 보곤 했었다. 그때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바쁘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항상 속으로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며 눈살을 찌푸리며 지나갔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늘의 나는 그 모습이 참 부러웠고 그 당시 다른 누군가의 인생의 단면만 보고서 판단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어쩌면 그냥 지나쳐서 내 삶에서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았을 하루였을지도 모르지만, 그 찰나의 광경으로 인해서 생각이 많아져 새벽에 글을 적고 있다. 우리는 참으로 역설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예전에 그렇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들을 오늘은 다른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해야만 하는 것들도 말이다. 


길었던 하루에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하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벤치에 앉아서 혼자 술을 마시는 아저씨를 보았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 그게 지금의 내 마음과 가장 닮아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벤치에 나와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을까 싶은 마음과 과거에 그런 사람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했던 부끄러움, 새벽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에 집에 가는 길에 있는 맥주집에서 혼자 맥주라도 마셔볼까 싶었던 마음까지 뒤엉켜서 오늘 또 생각이 많아졌다.


내일은 기회가 된다면 집 근처 벤치에 앉아서 혼자 소주를 좀 마셔보고 싶다. 혼자서도 곧잘 술을 잘 마시긴 하지만 내일의 혼자 마시는 술은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아있을 것 같다. 내일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우울감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스스로 좀 들어주고 달래줘야겠다. 뭐가 그렇게 답답해서 밤마다 술이 생각나게 하는지 말이다. 방을 정리 정돈하는 것이 중요하듯, 마음과 감정도 곧잘 정리정돈을 잘해놔야 한다. 


다음에 혹시 늦은 밤 집에 가는 길에 혼자 술을 드시는 분을 마주하게 된다면 직접적으로 말씀드리진 못 하겠지만 속으로라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고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게 어쩌면 혹시 나 스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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