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입사 선물로 받은 내 세이코 시계가 고장 났다. 메탈릭한 외관에 묵직함이 좋아 늘상 차고 다녔던 시계였다.
부품도 없어 수리가 불가능하다길래 찬장에 고이 모셔두었건만, 여전히 외출할 때마다 시계를 찾는 내 손이 허공을 더듬는다. 길을 걷다가도 문득 허전해진 손목에 신경이 쓰인다. 무게를 잃어버린 팔이 가볍게 흔들릴때면 흡사 누군가의 오랜 손을 놓아버린 냥 서운하다. 몸이 기억하는 십 년의 시간은 생각보다 가볍진 않다.
오래 차고 다닌 만큼 언제 생겼는지 모를 잔 흠집들이 꽤나 많았다. 그렇더라도 외관상 멀쩡한 시계가 하루아침에 멈출 리가 없다. 아마도 정교하게 어우러진 수많은 부품 어딘가에 생긴 작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전체를 고장 냈을 것이다. 미세한 태엽을 움직여 일 년 31,536,000초를 맞추던 정교 함이었으니 작은 문제도 어느 순간부턴 무시 못했을 테다.
외관상 잔 주름이 꽤나 간 서른 중반의 나 또한 크게 망가지진 않았으나 몸 곳곳 잔 고장이 어우러져있단 점에선 시계와 크게 다르진 않다. 정교함 보단 오차가 많다는 게 큰 차이점이지만 말이다.
새해가 밝은 2주 남짓, 새로운 다이어리가 새로운 계획으로 빽빽이 채워졌다. 시계만 없을 뿐 새로 주어진 시간에 해온 내 습관이었다. 물론, 연초 다짐과는 달리 날이 풀릴 무렵부터 의지가 옅어진다는 점 또한 매해 겪어온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꽃이 피었다는 핑계로, 때론 날이 덥다는 핑계로 말이다. 연초에는 정확히 맞아 돌아가던 시계의 초침이 점차 느려지는 것처럼. 몸 구석 구석 잔고장을 많이 품고있는 나일터였다.
왜 어떤 사람은 나와달리 시계처럼 계획한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우리 뇌는 새로운 행동을 반복 과정을 통해 자동화하는 능력이 있는데, 이 과정을 central pattern generation(중심 패턴 생성). 쉽게 말해 '습관'이라 말한다. 즉,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힘든 순간을 이겨내며 반복해온 결과가 자동화된 거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꾸준한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가 사실, 그 의지력과 고차원적 습관에 대한 동경과 흠모인 것이다. 내가 세이코였다면, 오랜 명성을 쌓아온 롤렉스를 향한 흠모랄까.
그렇게 보면 초가 쌓여 분이 되고 시간 그리고 일 년이 되듯, 매 순간의 선택이 내 습관을 또 나를 만드니 우리의 몸은 기계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시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1년을 마지막으로 두 번째 대학생 신분이 끝난다. 생각보다 짧았던 학업에서 다시금 사회로 나가는 기점이 돌아왔다. 치료사로서 새로운 습관을 들여야 하고 ,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삶을 대비해야 한다. 이제 난 더 이상 대학생이 아니고 회사원은 더더욱 아니다.
멈춘 시계를 버리진 않겠지만 아마 다시 꺼내지는 일은 없을 거다. 그저 지난날 내 습관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채로 보고 싶다. 한동안은 그간 습관처럼 손이 허둥대겠지만 언젠가 새로운 걸 채울 날을 기약하며 허전한채로 길을 거니려 한다. 물론, 그게 롤렉스이길 기대하며 말이다.
고마웠다 세이코. 기다려라 롤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