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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퇴물 Mar 22. 2021

35살 대학 새내기

아저씨....형님...형?

책상에 걸터앉아 얘기 나누느라 정신없는 학생들 사이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내 하나둘 목례를 하며 책상에 다소곳이 앉아 교수 쳐다보듯 올려보던 그 날은 내 입학 첫날이었다.

교단을 지나쳐 의자에 앉는 날 쳐다보던 시선에 마치 교수로서 직무유기라도 한 듯 미안함마저 드는 터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교수가 들어와 당신의 첫 강의라던 그 또한 우리학교 10년 선배라 했다. 내가 동기들의 띠동갑을 훌쩍 넘겼으니 교수 또한 나보다 어린 듯했다.

내 두 번째 대학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대학을 한번 경험해봤으니 크게 다르지 않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환경도 나도 많이 변해있었다.

첫째로 정장, 세미 정장 아니면 츄리닝으로 가득 찬 옷장은 학교를 다니기엔 너무 무겁거나 아님 그 정반대였다. 지난 십 년간 회사, 경조사, 미팅 등 상황에 맞는 복장과 함께 사회인이 돼버린 내 분신들이 그 안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

'여보, 대학 때 뭐 입고 다녔었지?'

아무리 옷 숲을 파헤쳐본들 학교에 어울릴 만한 옷은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으로 보일만한 옷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고민하다 '젊은 교수' 선으로 복장을 타협한다.

 

옷뿐만 아니라 내가 인지 못하는 사회 모습이 있을까 동생들과 말을 할 때면 꽤나 신경이 쓰인다. 혹여 난 다 안다는 꼰대 뉘앙스가 나올까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마냥 편할 수는 없는데 그런 날 보는 동기들은 내 호칭이 최대 난관이었던 것 같다.

'저기, 선생님? 삼촌? 형?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선생님이 되기엔 시간적으로 일렀고 또 삼촌이라기엔 심적으로 멀었다.

'난 형이 편해'

하지만 내뱉고 드는 미안한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15년의 시간을 없던 샘 치기엔 조금 염치없어 보이기도 했다.


입학 전엔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도 했는데 다행히 동생들이 많이 알려주고 도와준다.

교내 게시판을 올려다보던 나 때와는 달리 대부분이 시스템화 되어있어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게다가 수업시간엔 프린트를 해가는 게 당연했는데 이젠 다들 태블릿에 필기를 하니 종이에 줄 치는 내가 안쓰러워 보일 법도 하겠단 생각이 든다.


물론 서투른 모습이 있는 반면 동생들에겐 큰형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캠퍼스를 거닐다 카페 앞에 모여있는 동생들 커피를 모두 결제해주거나, 점심을 라면으로 때우는 걸 보면 은근슬쩍 도시락을 올려놓곤 사라져 버리는 둥의 행동 말이다.

때론 같이 먹기도 하지만, 왜 회사에서 쿨하게 카드만 주던 선배가 멋져 보인 것처럼 나름의 오마주 까. 평소 술값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돈에 행복해하는 그 모습들이 좋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오래전 미국에서 일을 할 땐 나이 많은 친구도 몇 있었다. 그 당시 20대였던 내가 마흔을 훌쩍 넘긴 이들과도 잘 어울렸으니 우정은 알고 보면 나이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 한번 겪어봤단 사실만 다를 뿐 그들 또한 그 나이를 처음 사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옛 생각을 하니 존댓말, 예절과 같은 제약만 없다면 내 어린 동기들과 도 잘 통할 텐데 싶은 생각이 매일 든다. 차라리 영어로 대화하면 편할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상상은 그런 욕심에서 피어나곤 한다.


나처럼 서른 중반에 대학교에 '학생'으로 돌아간 이는 아마 많이 없을 거다. 당장 내 주변만 해도 찾아보기 어려우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사회인도 학생도 아닌 주변인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데 솔직한 심정으론 주변인 신분도 나름 할만하단 생각이 든다.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다 한적한 국도로 잠시 빠져 평소 놓치고 있던 자연경관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처럼 말이다.


꼬불거리면 어떠하리 늦게 가면 어떠하리 경치를 볼 수 있음에 그저 나아가고 있음에 마냥 감사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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