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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퇴물 Feb 18. 2022

영혼이 메말랐던 사람

꿈 찾는 과정

꿈을 찾는다는 건 , 생각만큼 고되거나 힘든 일은 아니다. 그저 나와 오래 꾸준히 대화만 할 수 있으면 된다.


십오 년 전 군 제대를 하고 복학한 첫날, 한 교수님이 반 전원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다.

"자 다들 꿈을 하나씩 말하고 자리에 앉으세요."

우물쭈물하기도 했지만 다들 어찌 그리 잘 말하던지 하나둘 눈앞에서 사라지는 학생들을 보며, 또 다가오는 내 차례를 보며 심장이 쿵쾅 대었다.


'난.. 아직 꿈이 없는데.'

스무 살 남짓 갓 제대한 청년에게 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흘러가는 데로 살던 인생의 평범한 하루였을 뿐이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자 교수님께 전 아직 꿈이 없노라 얘기하며 앉으려던 찰나.

기어코 나를 일으켜 세우며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뒷얘기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첫마디가 '꿈이 없는 자는 영혼이 메마른 사람이다'로 시작했던 건 선명하다. 당신에게 꿈 없다 얘기하는 학생이 건방지게 보였는지 신랄한 비판 속 어떻게든 앉고 싶었던 당혹스러움만 날 선 아픔으로 남았다.


덕분에 스물의 내게 꿈이 없단 사실은 한동안 자책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날 뭐라도 얘기할걸 하는 곱씹음으로 시작해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뭔가? 고민에 빠지게도 만들었던 것 같다. 당시 교수는 얕은 식견과 부덕함으로 한 학생을 꾸짖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내게 도움을 준 셈이었다.


이후 힘겹게 스펙을 쌓고 입사 후 퇴사를 하기까지 근 10년간 나를 따라다닌 꼬리표를 달아준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졸업 후 남들이 중구난방 원서를 넣을 때도 신중했고 고민 끝 다닌 회사에서도 이 길이 맞는가? 수없이 되물었던 것 같다.


회사 동료들끼리 나누는 술자리에서도 시시콜콜한 상사 뒷담화 끝에는 늘 '진정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가 주제였다. 아니, 가만 보니 메마른 내 영혼을 적시게 만들려던 교수의 큰 그림이었던가? 조미x 교수의 발언을 한번 재평가해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여하튼 그렇게 오랜 기간 나는 나와 대화를 했고 , 그렇게 조금씩 답을 찾았다. 나는 운동을 좋아했으나 몸이 약했고 남을 돕는 걸 좋아했으나 더불어 가르치는 것도 좋아했다. 강단에 서면 에너지가 샘솟았고 날 향한 동경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대신 나를 조금씩 발견할 때마다 그만큼 행동으로 옮겼던 것 같다. 매월 연차를 써가며 머나먼 중국 '이우' '심천' '등 시장 탐방을 훌쩍 떠나기도 했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늘 자원해 강단에 서는 걸 연습했다. 꾸준히 해오던 철인 3종을 주제 삼아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해 보았으며 , 사내 동호회를 조직해 대회도 참가했다.


한 해 한 해를 돌이켜보면 이것저것 섞인 잡탕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게 부대찌개였노라 할 수 있을 만큼 내 기나긴 고민도 점차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물리치료사' 사람들의 생활 습관과 움직임을 통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

물론, 보다 깊이 관여할 수 있는 의사도 잠시 꿈꾸었지만 서른 넘은 유부남이 도전하기엔 현실적 한계가 너무 컸다. 그렇게 시나브로 퇴사를 했고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물론 이게 종착지는 아니다. 물리치료사로서 병원에 근무하며 다시금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현재로선 '골프 전문 재활트레이너'를 목표로 잡았으며 이를 달성키 위해 KPGA에 도전하는 꿈을 꾼다.

요즘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 준비운동을 하고 병원에 가기 전 골프연습장으로 먼저 가는걸 일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다 써가는 지금, 나갈 채비를 할 거다.


지난번 글을 쓰고 이런저런 문의가 꽤나 왔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궁금한 분이 대다수였다. 아마 당신도 하고 싶은 바를 고민하고 있는 중에 주신 문의가 아닌가 싶다.


이 글을 빌어 답변드리자면 결정적인 '왜' 라는 건 사실 없었다. 우리 모두는 다르기에, 나의 경우만 말씀드리면 그저 나와 대화한 시간이 길었을 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 결정에 현재 매우 만족스럽다 아니 내 영혼이 충분히 적셔진 것 같다라고 답변드리고 싶다.


다음 글에서 쓰겠지만 내 병원 첫 월급은 230만 원이다. 3년 전 받은 월급의 2/3가 날아갔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내 행복은 더 크다. 고민하거나, 혹은 메마른 삶을 살고 있는 당신께 감히 묻고 싶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한번 말하고 자리에 앉아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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