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비린내
식습관의 형성은 보통 집이나 학교 등에서 일어난다. 주로 유년시절, 어떤 것을 어떻게 먹었고, 어디서 누구와 먹었는지의 기억을 토대로 식습관을 차곡히 쌓아간다. 앞서 생선의 경우, 생선의 눈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비린내를 형성했던 것처럼 유년시절의 음식은 오감으로 기억되었다.
고기의 경우는 나의 기억의 식습관이라기보다는 엄마의 식습관이 전해진 경우이다. 고기를 못 드시는 엄마는 자신이 드시지 못하는 고기를 가족을 위해 요리하셨다. 닭고기는 유년시절 닭 잡는 모습을 본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거의 평생을 닭을 안 드셨고, 돼지고기의 경우 몸과 안 맞아 두드러기 증상을 나타났기에 안 드셨으며, 소고기의 경우는 그나마 먹을 수 있었으나 경제여건상 많이 드실 수는 없었다.
그나마 이런 사실을 안 것은 고등학교나 들어갈 때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는 그 흔하다는 소시지나 햄은 구경하기 힘들었다. 핫도그 먹고 두드러기 증상이 나타났던 예민했던 우리를 본 후 엄마는 소시지를 식탁에서 감췄다. 소시지를 만난다는 건 친구 도시락이나 할머니 집을 가서만 볼 수 있었다. 할머니 집을 가면 분홍 소시지를 잘라 계란물에 담가 앞 뒤로 노릇하게 부쳐주셨다. 우리가 할머니 집에 가는 걸 좋아했던 이유다. 엄마의 식습관이 반영된 굉장히 편협했던 식사는 그 어린 시절, 마냥 즐거울 순 없었을 것이다.
크면서 집에서 먹어볼 수 없었던 다양한 고기 요리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치킨이라던가, 순댓국이나 감자탕, 곱창 같은 우리 집에서는 엄두도 못 낼 그런 요리들 말이다.
그중 감자탕과의 첫 대면은 정말 우울했다. 이때만 해도 감자탕이 몬 지도 몰랐다. 학교 앞 감자탕집에서 친구들과 만났다. 나만 빼고 감자탕에 다들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뼈를 잡고 먹는 모양새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한입 먹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고기의 비린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사골이라던가 도가니탕 등의 뼈를 우린 음식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첫 번째 안 좋은 기억이 좋아졌던 것도 있었다. 바로 순댓국이다. 20대 초반, 아는 언니가 밥을 사주겠다며 데려간 곳은 돈암 시장안의 선지 순댓국을 파는 노점상이었다. 딱히 큰 테이블도 없었고 낮은 의자에 앉으면, 할머니가 큰 솥단지에서 선지 순댓국을 한 그릇 탁 퍼서 주셨다. 그 당시에는 선지 순댓국을 처음 보고 그 색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선지 순댓국을 먹기엔 조금 일렀던 것 같다. 역시나 나는 그 이후로 순댓국에 안 좋은 추억이 있다면서 먹기를 거부했다. 십여 년이 흘러 아는 동생이 진짜 맛있는 순댓국을 맛 보여주겠노라 한사코 거부하는 나를 끓고 데려간 곳은 들깨가루를 솔솔 뿌린 말간 순댓국이었다. 순댓국은 원래 까만 거 아니냐며 놀라는 나에게 코웃음을 쳤다. 한번 안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선지 순댓국과 그냥 순댓국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것이다. 말간 순댓국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사실 갈비탕 같은 느낌의 국밥은 먹었기 때문에 굳이 맛 때문이라기보다는 선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웠던 거 같다. 그 이후로 맛있는 순댓국 먹으러 다니는 일도 종종 있고, 무엇보다 순댓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게 된 것이라 그날의 순댓국은 잊을 수 없다. 순댓국처럼 나이가 들면서 못 먹는 것도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입맛이 변해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엄청난 감자탕을 맛보지 않았지만(그럴 기회가 많지 않았기에) 언젠가는 감자탕 마니아가 될 날을 기대해 본다.
*이번 글엔 레시피가 없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제가 생선보다 고기에 대해 더 민감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못 먹는 게 많아서 세상 아쉬운 1인입니다.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