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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udio AccA Jun 21. 2020

편식 주의자의 식탁-죽순

죽순의 기억

'어, 이건 뭐지?'

가족 모두가 둘러앉은 식탁에서 허여 멀 건한 야채를 집어서 입안으로 넣고 막 씹기 시작하면서 든 생각이다.

식탁 위에는 가족들이 오랜만에 중국음식을 배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단순히 짜장, 짬뽕으로 끝난 게 아니라 중국요리 몇 가지를 시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유산슬 정도였지 아닐까 싶다.

무슨 재료인지도 모른 채 젓가락질을 하다 보니 딸려 들어온 아이는 맛이 오묘했다. 이건 모라고 정의하기가 애매했다. 맛이 이상하다라고밖에 정의할 수 없었다. 그 이상함은 결국은 맛없음으로 인식되었지만, 교묘히 중국음식에 종종 섞여 들어가 '속았지?'라며 어린 시절의 나를 입안에서 놀려댔다.

그 이후 마주하게 된 죽순의 모습은 중국요리를 배울 때였다. 초록색 글씨에 '죽순'이라는 깡통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뚜껑을 따면 죽순과 물이 섞여서 들어가 있었는데,  왠지 꼬리꼬리 한 느낌이 들어 썩 기분이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죽순 안쪽의 사이사이엔 하얀 이물질 같은 걸로 보이는 것(석회질)들이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은 왠지 먹지 못할 것을 먹는 느낌이였다. 게다가 바로 쓸 수 없고, 아린 맛 제거를 위해 데쳐서 석회질을 제거해야만 쓸 수 있었다.

'맛도 없는 것이 또, 바로 쓸 수도 없네'

그 이후로는 죽순이 들어간 중국요리는 캔 죽순이라는 고유명사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죽순을 열심히 골라내던 시절이 지나고, 나에게도 죽순의 실물을 영접할 기회가 찾아왔다.

식당을 하고 있던 몇 년 전 생죽순을 삶아서 가져다준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에게 죽순의 기억을 주르륵 나열했다. 친구는 맛이 다르다고 했다. 꼭 한번 먹어보라며 권유하니 어떤가 싶어서 코를 쓰윽 내밀었다. 내 기억의 죽순의 향이 아니었다. 거의 무향에 가까운 느낌인데, 살짝 구수했다.

입안으로 한입 가져가자 살짝 구수한 향이 올라온다. 아삭아삭하니 식감도 좋았다.

그 이듬해에는 생죽순을 구입했다. 죽순은 맛없는 어떤 것이었지, 닭발처럼 먹기 싫은 게 아녔으므로 도전은 해볼 수 있었다. 친구에게 죽순 삶는 법을 배워 1시간 남짓 끓이고, 물에 담그고 하는 땀이 뻘뻘 나는 여름의 작업에 발을 내디뎠다. 끓는 동안 풍겨오는 구수한 향은 엄청났다. 마치 옥수수 삶는 향이 올라왔다.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 모냥 순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삶은 작업을 하고 바로 먹는 죽순은 가히 기가 막혔다. 은은한 구수함이 맘에 들었다. 어디에도 어울릴 수 있는 식재료였던 것이다. 매일같이 메뉴를 바꿔야 하는 나에게는 새로운 식재료는 엄청난 일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도 나름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한참을 멀었다 싶었다.

그 이후로 주변의 각자의 죽순 삶는 법을 모았다.

어떤 기사에는 껍질째 삶으라하고, 또 다른 기사엔 통으로 삶으라 하고, 어느 요리 선생님은 삶은 물 그대로 두라고 하고, 어느 농부님은 찬물에 꼭 바꿔서 두라고 하고, 쌀뜨물이 좋다고 한다던가, 쌀겨를 쓰라고 하기도 하고 각자의 레시피들이 달랐다.

어쩔 수 없이 한해씩 변경해가며 죽순을 삶았다. 몇 년은 잘 삶다가 어느 해에는 망하기도 했다.

보관방법도 조금 달랐는데, 그대로 냉동하라고 하는 경우도 대부분이고, 물과 함께 넣어 냉동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방법은 나중에 죽순이 갈라졌다. 근데, 그때의 죽순은 삶을 때부터 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작년부터 받고 있는 담양의 죽순 농부님이 알려주신 방법인데, 그래도 냉동할 때는 물을 첨가하는 게 맞는 거 같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어차피 3개월 이상은 보관하지 않는 것이 좋고, 죽순은 여름의 재료니까 여름에만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가, 매년 여름마다 하는 이 과정이 할 때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뭐, 그도 그럴 것이 매년 다른 방식으로 죽순을 삶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거의 5년은 죽순을 대하고 있는 거 같은데, 좀 더 죽순에 대해 파고 들어가야 할 듯했다.

사실 작년에 농부님 말씀이 죽순의 종류가 다르다고 5월 초에 나오는 것은 맹종죽, 5월 말, 6월 초에 나오는 건 분죽, 그 이후엔 왕죽이 나오는데, '식감으로 으뜸은 맹종죽이요, 맛으로는 으뜸이 분죽이라'는 이야기에 혹해 분죽시기를 기다렸다가 분죽을 받았다. 유달리 길고 얇은 형태의 죽순이였다. 껍질 안쪽은 연했다.

이것은 껍질째 삶아야 하나? 아니면 껍질을 벗기고 통으로 삶아볼까? 이런저런 고민이 들었다.

껍질째 넣기엔 나의 냄비는 작은 듯했다. 10킬로의 죽순을 삶아야 하니 껍질은 포기했다. 대신 통으로 몇 개를 넣었다. 끓기 시작하던 죽순 냄비에서 통통하고 물이 튀기 시작했다.

'안돼~~' 얼른 죽순의 끝에 칼집을 넣었다. 그러면서도 물이 튈까 조심조심하며 재빠르게 칼집을 넣었다.

이번에는 쌀겨만을 넣었다. 마른 고추를 함께 넣는 방식도 있었지만, 혹시 구수한 향을 놓칠까 염려되고, 다른 사람들의 방식을 알아보니 고추를 넣었다가 쌀겨만 넣고 삶는 방식을 바꾼 것을 보았다. 올 해는 일단 쌀겨만 넣기로 했다. 사실 쌀겨의 양도 정확치 않아서 테스트가 필요했으므로 그냥 다른 것은 빼자는 결론으로 갔다. 어차피 내년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삶아볼 것 같다.

잠시 불 앞에 있었을 뿐인데 또다시 온몸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구수한 죽순의 향이 부엌 전체에 퍼졌다.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지만, 기분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미치는 사실 좀 웃겼다. 어린 시절 기분이 이상하게 별로여서 입에도 안 대던 죽순을 이렇게 열심히 삶고 있다니!

그래서 무엇이든지 장담하는 건 아닌가 보다.

'난 절대 죽순을 먹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열심히 삶은 죽순은 바로 사랑 그 자체가 되었다. 식당을 하는 동안 여름이 돌아오면 꽤나 효자 식재료로 식당을 빛내주었다. 열심히 손님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죽순을 좋아해?

이렇게 열심히 요리한 것은 남에게 쉬이 먹이기 전에 보통은 가족을 먼저 챙기기 마련이다. 식당을 할 때는 손님이 먼저였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부엌을 떠나지 않으시던 어머니는 이제 그렇게 건강하지 못하다. 정성 들여 요리하는 일들을 많이 줄이셨다. 부엌의 출입을 금하고 싶을 정도이시지만, 아직도 부엌에 자주 계신다. 어머니들이란 그런 고집을 하나씩 달고 사는가 보다. 죽순을 좋아한다는 말씀에 냉큼 챙겨서 어머니 집을 향한다.

이제 생죽순의 맛을 보여드리는 것은 이렇게 세월이 지난 후에 딸내미의 몫으로 남은 것 같다.


죽순 삶기

재료 : 쌀뜨물 또는 쌀겨, 홍고추 등

- 반을 갈라서 껍질을 벗겨낸다. (여린 부분의 죽순은 껍질째 삶아도 좋다.)

- 죽순이 잠길만한 냄비에 죽순을 넣고 물 또는 쌀뜨물을 채워 약 1시간 남짓 삶는다.

- 꼭지 부분은 연하기 때문에 먼저 건지고, 밑동 부분은 순차적으로 천천히 건져낸다.

- 그대로 삶은 물에 담겨 5시간 이상 담근다. 또는 찬물로 옮겨 담가놓는다.

- 물에서 건져 바로 먹을 것은 냉장고에 보관은 물을 약간 넣어 냉동실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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