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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빈 Aug 06. 2016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오슬로에서 거지로 살아남기

노르웨이 여행기② 돈이 없어 비참했던, 오슬로에서 일어난 4가지 에피소드


돈이 없는 가난한 배낭여행객에겐 그저 잠을 청할 수 있는 작은 쉼터와 약간의 음식 그리고 목마름 정도만 지울 수 있는 물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오슬로는 이 어떤 것도 쉽게 허용되지 않았던, 배낭여행객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도시였다.   


열흘동안의 여행동안 내가 먹을 빵들. 내 배낭엔 빵과 빵 봉지뿐. 



        


# 첫 번째 에피소드, 친구를 잃다     


교환학생을 함께 지내는 대만인 친구가 하나 있다. 이름은 윤즌이고 우리는 꽤나 가까워졌다. 어쩌다 오슬로에서의 일정이 겹쳐 하루 정도 여행을 함께하기로 했다.      


너무 비싼 오슬로의 교통요금


   우리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쉬고 아침 일찍 나섰다.
그리고 함께 여행을 시작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헤어졌다. 


   망할 트램 티켓 때문이었다. 이날 아침, 한 번 타는데 5천 원이나 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트램 티켓을 사고 싶지 않아 무임승차를 할 생각이었다. (이런 거 이렇게 말해도 되나.. 하하) 그런데 미리 티켓을 사둔 윤즌이 아주 당당하게 기사 아저씨 쪽 문으로 타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나는 곧바로 뒷문으로 달려가 탑승을 시도했지만, 이미 기사 아저씨가 눈치를 챈 듯 재빨리 문을 닫아버렸다.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져 가는 트램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렇게 허무하게 우리의 함께하자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미 겨울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듯 창문에 서리가 껴있었다.


   시내까지 40분을 걸었다. 10월 중순이지만 북쪽 나라라 그런지 춥다.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 창문 위에는 이미 겨울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듯 서리가 껴있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10kg이 넘는 가방을 메고 걷는 일은 버겁다. 

    

길바닥에서 우연히 만난 러시아 친구들


여행에서의 우연은 언제나 즐겁다


   시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내 러시아인 룸메이트가 보인다. 다른 러시아 친구들과 함께였다. 우린 서로 놀랐고 동시에 굉장히 반가워했다. 하루 일정이 겹치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큰 도심 길바닥에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는 비록 윤즌을 잃었지만 다른 친구들을 만나 함께 여행을 했다. 이런 우연은 언제나 좋다. 


수많은 조각 작품이 있다는 비겔란 공원. 212개의 작품이 있단다. 

     


# 두 번째 에피소드, 비행기를 놓칠 뻔하다.      


첫 도전에 쉽게 히치하이킹에 성공했던 터라 자신감이 좀 생겼는지,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음에도 굳이 공항까지 히치하이킹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고속도로 입구에 가 한동안 엄지를 치켜세우고 또 한 번의 행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린 지 30분이 지났을까. 시간을 확인하니 빠듯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여기서 비행기를 못 타면 앞으로 열흘간의 여행을 말아먹게 된다. 생존 달리기로 버스 터미널로 뛰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땀이 났다. 뛰어서가 아니라 긴장해서 나는 듯했다. 전광판을 보니 내 비행기 시간에 맞춰 갈 수 있는 마지막 버스의 출발시간이 1분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매표소의 줄은 너무 길어 티켓을 사기도 전에 버스가 떠날 것 같았다. 마음이 너무 초조했고, 출발시간이 딱 되자마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버스정거장으로 뛰었다. 그 사이에 이미 1분이 지났다. 차가 이미 떠나진 않았을까?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      


히치하이킹을 위해 서있었던 고속도로 입구. 표지판에 스톡홀롬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정거장에 버스가 서있다!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감사했다.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원래 같았으면 이미 출발하고도 남았겠지만 한 승객의 카드가 리더기에 인식되지 않아 늦어진 것이었다. 그렇다. 티켓을 굳이 사지 않고도 여기서 카드로 긁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 할인까지 받아서 약 3만 5천 원에 티켓을 샀다.      


   만약 내가 이 차를 타지 못했더라면 국제미아가 됐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 생각해보니 기차도 있고, 택시도 있었다. 이 세상의 교통수단은 버스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던 바보 같은 나였다. 공항에 도착해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가 참 길었다. 사건과 사건의 연속이었다.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추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 세 번째 에피소드, 오슬로 시내에서의 노숙 그리고 화장실 전쟁     


일주일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오슬로 공항으로 돌아왔다. 번거롭지만 이 방법이 가장 저렴한 루트였다. (사실 나중에 따져보니 돈이 더 들었다는) 

현재 시각은 24일 밤 11시 반. 오늘로부터 이틀 뒤인 26일 오후 6시에 에스토니아로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 오늘 하루는 공항 노숙을, 내일은 숙소를 잡을 생각이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귀신에 홀린 듯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도심으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새벽 1시가 되어 오슬로 도심에 위치한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고, 그곳에 앉아 마침내 생각을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은 이렇게나 예쁘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예쁜 항구가 아닐까 싶다.


   이제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게는 지금 숙소도 없고, 아는 이도 없다. 바깥은 이미 깜깜했고, 길가엔 몇몇의 노숙자들이 보인다. 이 상황에서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뿐. 노숙. 버스터미널에 앉아 내일 아침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공항에라도 있었다면 안전하기라도 했을 텐데 이곳은 너무 춥고 무섭다. 오슬로의 살인적인 물가 때문에 주변에 보이는 호텔에는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24시간 맥도널드조차 먼 곳에 있어 찾아갈 수 없었다.      


   점점 지치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행여나 내 배낭을 훔쳐가진 않을까 꼭 안고서 주변을 경계한다. 새벽 버스를 타려는 몇몇의 승객들이 드나들고, 때때로 터미널 경비원이 순찰을 돈다. 홀로 두려움에 떠는 눈빛으로 앉아있으니 흑인 무리들이 내 주변에 둘러싸고 앉아 한참을 킬킬댄다. 그 상황이 무서워 자리를 떴다. 다행히 따라오진 않는다.      


   내일 아침에라도 숙소에 들어가 쉬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슬로 시티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인 37,000짜리 호스텔로 예약했다. 당신에겐 그리 비싼 요금이 아니라고 생각되겠지만, 그동안 만 원짜리의 숙소에서만 묵어왔던 나로서는 꽤나 호화로운 비용이었다.     

      

카를 요한의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왕궁이 나온다. 이곳에 서면 오슬로를 한 눈에 전망할 수 있다. 



화장실 전쟁 1탄

터미널 내의 화장실 입구 앞에 섰다. 이용 요금은 10 크로네, 우리 돈으로 1300원이 조금 넘는 돈이었다. 내 주머니엔 유로뿐이었고, 만약 ATM기에서 돈을 뽑더라도 동전으로 바꿀 수 있는 가게도 없었다. 열흘간의 여행 중 가장 위급한 상황에 닥쳤지만, 그저 참고 빨리 아침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추운 바깥에 나가 화장실을 찾으러 다닐 힘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동전을 달라고 할 용기도 없었다.     

 

   5시간만 참으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이 오면 상점도 문을 열고, 나는 화장실에 갈 수 있겠지. 그리고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흘렀다. 현재 시각 새벽 3시가 다 돼간다. 오예! 하지만 몇 분 뒤 확인한 시계는 다시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뭔가 잘 못 됐다.     


   10월 25일 새벽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1시간이 뒤로 갔다. 하필 내가 노숙을 하는 그 순간,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 미칠 것 같았던 그 순간에 시계는 한 칸 뒤로 움직였다. 이 순간 노르웨이에 대한 미움과 설움이 폭발할 것 같았다. 더 이상 이 나라에 있고 싶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장실을 참고 있는 게 버거워졌고, 아무 생각 없이 터미널을 뛰쳐나가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깜깜하고 가끔 술 취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새벽의 거리에 무서움을 느끼고 다시 터미널로 재입장했다.


무료화장실이 있는 오페라 하우스 내부 모습. 외관도 굉장히 화려하고,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의 모습도 아름답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중앙역에 무료 화장실이 있단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만큼 힘들어진 나는 역으로 힘겹게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확인한 피켓은 20 크로네의 화장실 이용료. 화장실 한 번에 3000원이라니, 사기꾼들. 아주 감사하게도 화장실 앞에서 카드결제를 하고 들어갈 수 있다. 태어나서 이렇게 럭셔리한 화장실을 이용할 줄이야. 3천 원이 억울했던 나는 그곳에서 볼일을 보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다시 화장까지 했다. 그러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또 하나의 무료 화장실이 있는 오슬로 시청사. 매년 12월 10일 이곳에서 노벨 평화상 수여식이 열린다. 주변에는 노벨 인스티튜드 및 국립미술관(뭉크의 절규를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참고하시길.



화장실 전쟁 2탄

26일, 드디어 에스토니아로 돌아가는 기쁜 날이다. 이날 중앙역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마지막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상하게도 발트 3국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언제 또 이 맛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또다시 화장실 신호가 왔다. 점원에게 물어보니 3천 원짜리 럭셔리 화장실에 가란다. 또다시 화가 났지만 이미 오슬로의 무료화장실 위치 몇 군데를 알아둔 상태라 역에서 5분 거리의 오페라극장에 가서 볼 일을 봤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팁을 주자면, 혹시 오슬로 여행을 간다면 무료 화장실의 위치를 꼭 확인하시길. 오슬로의 무료화장실은 중앙역 주변의 오페라극장과 오슬로 시청이 거의 유일하다.      



          

# 거지 여행을 마치며     


23년 인생 중 가장 길었던 새벽을 보내고, 14시간의 숙면을 취했다. 이 개운함은 글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왕꿀잠!!!!!!!’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열흘간의 여행에 끝이 보인다. 고생을 많이 했던 열흘이지만, 이미 지난 일이에게 벌써 재밌는 추억으로 기억된다. 


깔끔하고 예뻤던 오슬로 시티의 길거리


사실 생각해보면 순간순간마다 고비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당신도 내가 바보라고 생각하겠지만, 여행 초보자라면 누구든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나름 이런 일에 대처하는 것에 있어서는 나름 박사(?!)라고 자부한다.  

         

가난한 여행자에겐 너무나 가혹한 도시였다. 노르웨이를 떠나는 심정은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느낌과 같다. 빨리 내 고향 탈린으로 돌아가 고기를 마음껏 뜯고, 술을 원 없이 마시면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여행이 끝나면 항상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여전히 설레는 이유는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있는 내게는 하루하루가 어쩌면 여행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일은 또 어떤 에피소드가 일어날지, 나는 또 얼마나 바보같이 대처할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이곳의 생활들이 즐겁다.           

잘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 중 하나.


* 너무 과할 정도로 힘들게 여행을 했다. 나도 안다. 하지만 해외여행이 거의 처음이었고,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기에 일어났던 일이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이런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고 온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열흘간의 중간방학,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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