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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혜빈 Jul 13. 2016

수영은 팔다리로 하는 게 아니야

나의 생애 첫 수영 도전기




"바로 멋지게 수영하고 싶죠? 숨 쉬는 것부터 배우세요."

                    물속을 휘젓고 다닐 모습을 상상했던 내가 첫 수영 수업 때 들은 말이었다.    


  

마 전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키보다 높은 수영장 물에 빠져 아찔한 경험을 한 뒤로 피했던 곳이었다. 갑자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수영을 배워보겠다고 다짐한 그날, 일을 저질렀다. 거의 십여 년 만에 입어보는 수영복이 민망했는지 고개를 떨군 채 수영장에 입장했고, 물속에 들어선 뒤에야 비로소 허리를 곧게 펼 수 있었다.  

    

  이십여 명 가까이 되는 초급반 사람들 중 수영을 난생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어린이 풀장으로 가라는 강사의 말에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를 옮겼다. 무릎만치 오는 물 높이는 또다시 수영복을 입은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수영할 땐 무조건 으으으으으으음, 파! 흡<<


  맨 처음 배운 것은 수영 호흡법으로 수영을 배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음파 호흡법’이었다. 어떤 대단한 의미가 숨어있는 호흡법은 아니고 물속에서 7초간 ‘음~’이라는 소리와 함께 날숨을 쉬고 물 밖으로 나오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파!’라고 외치며 입 주변의 물기를 제거한 뒤 빠르게 들숨을 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남에게 설명하는 것은 참 쉽지만 막상 시도해보면 말처럼 쉽지 않았던 이 호흡법만 일주일을 연습했다. 화려하게 헤엄을 치겠다는 생각은 이미 접어둔 지 오래다. 숨 쉬는 것 말고는 한 게 없는데 매번 헐레벌떡이다 집에 돌아오곤 하니 부모님이 보시기엔 100m 경기라도 뛰고 온 줄 알겠다. 그래도 나만 어려웠던 것은 아닌지 어른 풀장에서 배우는 일부 사람들도 어린이 풀장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강사는 내게 응원의 ‘하이파이브’를 해주곤 했다. 스물 네 살의 나이지만 여전히 ‘잘하고 있어’ 이 한 마디에 감동받고, 더 잘 해보인 뒤 칭찬도 받고 싶어 진다. 고작 이 칭찬 한 마디 더 받아보겠다고 강의 시간엔 꾸준한 연습을, 집에 돌아와선 수영 영상으로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 연습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호흡이 편해졌고 호흡을 1회만이 아니라 몇 번이고 연속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이전에는 수영판을 이용해도 몸이 가라앉았는데, 이제는 물에 뜨는 것도 모자라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벌떡 일어나 ‘유레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 정도로 배짱 있는 사람은 아니라 조용히 미소를 띠는 것으로 나에 대한 칭찬을 대신했다. 비록 짧은 기간의 노력에 대한 성취였지만 그 뿌듯함은 굉장히 컸다. 이때 문득 느꼈던 것은 ‘기본’의 중요성에 대한 실감이었다. 수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호흡법을 잘 배우는 것이 기본이라는 수영강사의 말에 어른 풀장으로 하루빨리 가고자 했던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연습했던 그 원동력이 나에게 있어 탄탄한 기본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는 보통 장애물을 만난 뒤에야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결심을 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빠르게 끝내고 싶은 마음에 기본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하다 보면 기본은 쉬운 거니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다 결국 큰 장애물을 만난 뒤 그제야 ‘기본으로 되돌아가겠다.’라는 결심을 한다. 어쩌면 남들보다 모든 것을 빨리 해야 인정을 받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랜 시간 탄탄한 기본을 만들어 둔 뒤엔 한 단계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그 속도와 힘의 가중치는 제곱으로 커질 것이라는 점, 그래서 단계가 올라갈수록 오히려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이것이 내가 지난 4년간 대학 생활을 하며 배운 점이기도 하다.   

   

  드디어 나도 어른 풀장에 입성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엄청난 양의 물이 주는 압박감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기본을 잘 잡은 덕인지 곧바로 적응할 수 있었다. 사실 앞으로의 갈 길이 더 멀다. 일단 수영판부터 떼는 연습을 하고 본격적으로 팔로 추진력을 내는 연습도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호흡법 연습 때 고생을 했던 것보다는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용기가 있다.      


  바쁜 시대에 살면서 무엇인가를 천천히 시작하거나 누군가가 잘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기다려줄 수 있는 여유마저 사라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본부터 충실해야 한다는 것, 빠름보단 정확성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가 더 요구돼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오늘부터 나도 어른 풀장으로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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